[신간] '악마의 눈물, 석유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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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눈물,석유의 역사
귄터 바루디오 지음, 최은아 외 옮김
뿌리와이파리,720쪽,2만5000원

석유에 ‘악마의 눈물’이라는 영예스럽지 못한 호칭을 붙인 것은 미국의 석유 황제 록펠러였다. 석유의 역사는 곧 모순의 역사였다. 성서에서 흔히 지옥과 악마의 세계를 상징하는 역청(일종의 천연 석유)은 한편으론 인류를 구원한 노아의 방주를 완성하는 방수재료로 활용됐다. 1859년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처음으로 석유가 산업적으로 개발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현대 문명을 일으킨 일등 공신이었지만 환경파괴라는 재앙의 씨앗을 뿌렸다. 풍요롭고 편리한 삶을 가져다 줬지만 국가간 갈등과 반목, 종속과 빈부격차를 일으킨 주범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석유는 항상 국제 정치·경제 분야에 뜨거운 논란을 일으켜 왔다.

한때 석유 시추 기술자로 일하다 학자로 변신한 독일인 저자는 다양한 방향에서 석유의 역사를 파고 든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록펠러에 대한 서술이다. 수많은 경쟁자를 압살한 ‘아나콘다’로 불린 그는 산업의 재편성을 통해 석유의 상품화에 일대 진전을 가져온 인물로 재평가된다. 초창기 석유산업엔 개발·시추 위주로 모험가·투기꾼들이 넘실댔지만 록펠러는 정유·주유소 부문을 강화해 안정적인 수익창출에 나섰다. 거대한 ‘석유 카르텔’도 초기 합리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석유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자구책의 성격이 있었다. 록펠러 못지 않게 석유산업에 많은 영향을 끼친 노벨 형제도 이 책에선 온전히 복원되고 있다. 러시아 바쿠 지역에 강력한 석유제국을 건설하고 최초의 유조선을 발명해낸 이들은 그간 미국인들의 저작에서는 다소 평가절하돼 왔다.

석유의 과거뿐 아니라 미래도 이 책이 다루는 중요한 주제다. 그러나 이른바 ‘석유 고갈의 위기’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지구에는 아직 손도 못댄 거대한 심해 유전이 존재하며 시추기술도 계속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석유를 지금처럼 난방용이나 연료용으로 대량 소비해 오염과 파괴를 지속해야 하느냐다. 저자는 근대 산업시대를 연 계몽주의에 이은 제2의 계몽주의 운동이 일어나길 기대하고 있다. 이전의 계몽주의가 자연을 탈신비화해 개발시대를 열었다면 새로운 계몽주의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윤리규범을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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