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수사 어떻게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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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나라당 이기택 전 총재권한대행에 대한 전격 검찰소환 결정 사실은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핵심 내에서도 극히 일부 인사만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회의의 조세형 (趙世衡) 총재권한대행.한화갑 (韓和甲) 원내총무는 물론 대통령을 곁에서 챙기는 수석들까지도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 그저 몇명만이 얼마전 시내 별도의 장소에서 조사를 받던 李전대행이 반발했다는 정도를 알고 있었다는 전언이다.

사정에 관한 구체적 정보가 이리저리 새나가다가는 검찰수사가 제대로 될 수 없다는 대통령의 확고한 인식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상황을 직접 챙겨야 하는 핵심들조차 서로 연락할 때는 별도의 전화를 사용하거나 직접 만나 조율하기도 한다는 얘기다.

외형상 정치인 비리수사는 검찰의 전적인 책임아래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사안이 사안인 만큼 정치적 고려가 불가피하고, 따라서 청와대가 불가불 관여하리라는 게 대다수의 관측이다.

또 최소한 정치권 인사에 대한 수사진행 상황, 소환대상자 선별 등이 보고라인을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되는데 이 과정에서 청와대측의 정치적 의도가 어느 정도 개입될까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끈다.

확실하고 분명한 체계는 김태정 (金泰政) 검찰총장→김중권 (金重權) 대통령비서실장→대통령 라인이다.

金총장과 金실장 사이엔 청와대 박주선 (朴柱宣) 법무비서관이 끼어 있다.

金총장은 朴비서관의 광주고.검찰의 대선배. 그래서 실장과 총장이 '직거래'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朴비서관은 또 정치인 사정을 총지휘하는 대검 중수부가 '대외비' 로 작성해 법무장관에게 전달하는 수사진행보고서를 수시로 챙긴다.

때로는 그 역 (逆) 관계도 이뤄지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청와대측은 일절 부인한다.

金총장이 金대통령을 '독대 (獨對)' 한다는 소문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집권후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단독으로 불러들인 적은 한번도 없다" 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정치인 사정의 '정치성 논란' 을 의식해 지난주엔 박상천 (朴相千) 법무장관과의 면담일정까지 일부러 취소했다고 한다.

또 金총장의 대통령에 대한 보고는 김중권 실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뤄진다.

최근 "여야 성역없는 정치권 비리 사정이 대통령의 유일한 사정원칙" 이란 점을 金실장이 직접 金총장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수사에 직접 간여했다는 점을 가급적 피하기 위한 배려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대통령은 검찰의 관련 보고를 주로 듣는 편이며 원칙적이고 추상적인 지시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고 말했다.

표적사정은 말이 안된다는 주장이다.

과거 권력핵심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이뤄지곤 했던 기획사정도 없다는 것. 그러나 정치인에 대한 사정은 과정 자체가 정치행위가 되므로 '표적사정' 을 이유로 한 야당의 저항은 그치지 않을 것 같다.

전영기.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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