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in 뉴스] 28년 장수 상품 ‘갈색병’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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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로더의 ‘어드밴스드 나이트 리페어’ 라인은 웬만한 여성이면 알 만큼 유명하다. 하지만 정작 이 길고 어려운 이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미 사용해본 사람이나 아직 써보지 않은 사람 모두 ‘갈색 병’이라는 애칭으로 줄여 부른다. 그래도 통할 만큼 국내에서 인기가 많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 별명은 우리나라 소비자가 붙였다. 요즘 에스티로더는 전 세계 광고에 갈색 병이란 뜻의 영어 ‘브라운 보틀’을 쓴다.

1982년 첫선을 보인 이래 28년째 장수하는 이 화장품이 새로워졌다. 처음 출시되고 10년째 되던 91년에 제품 개선이 이뤄진 후 18년 만이다. 워낙 오랫동안 많은 여성에게 사랑 받아온 제품이라 무엇이 달라졌는지 궁금해 하는 소비자가 많다.

일단 이름이 바뀌었다. 1세대 ‘나이트 리페어 셀룰러 리커버리 콤플렉스’는 91년 2세대인 ‘어드밴스드 나이트 리페어 프로텍티브 리커버리 콤플렉스’로 변했다. 지난 주말 국내에 처음 공개된 3세대의 이름은 ‘어드밴스드 나이트 리페어 싱크로나이즈드 리커버리 콤플렉스’다. 단어 변화에 주목해 보면 ‘프로텍티브’가 ‘싱크로나이즈드’로 바뀐 것이 눈에 띈다. 무슨 이유일까. 에스티로더 코리아 홍보 담당 김인애 부장은 “제품 개선의 핵심인 기술변화를 한 단어로 요약해 넣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싱크로나이즈드’는 ‘동기화’란 뜻이다. 새 제품에 피부의 생체시계를 활성화시키는 기술이 적용됐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 기술의 이론적 전제는 ‘인간의 생체시계가 제대로 작동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피부 세포에도 이런 생체시계가 따로 있고, 시계의 배터리가 떨어지면 시계가 느리게 가듯 나이가 들고 스트레스 등 자극에 노출되면 피부 생체시계도 오작동을 한다는 것이 에스티로더 연구진의 결론이다. 생체시계가 느려지는 것을 ‘비동기화’라 표현하고, 피부의 자연 재생 기능이 살아나도록 생체시계를 고치는 것을 ‘동기화’라고 부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마디로 피부 자체의 재생 메커니즘을 자연스럽게 동기화시키는 기술을 적용했다는 게 새 제품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갈색 병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각종 기록을 몰고 다녔다. 프랑스의 로레알 그룹과 세계 고급 화장품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에스티로더 그룹은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첫 번째 갈색 병에 ‘히알루론산’을 썼다. 안약 등에 흔히 쓰이는 성분인 히알루론산은 눈을 촉촉하게 만든다. 80년대엔 이 물질 자체가 상당히 귀해서 에스티로더처럼 자금이 풍부한 거대 화장품 회사만이 이를 사용해 화장품을 만들 수 있었다. 화장품 소비자가 민감하게 느끼는 제형도 독특했다. 갈색 병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화장품은 흔히 ‘스킨’이라 불리는 물 같은 제형과 퍼 바를 수 있는 크림 종류뿐이었다. 갈색 병은 이런 통념을 깨고 묽은 크림 형태로 만들어 ‘피부에 영양을 공급하는 새로운 화장품’의 이미지를 적극 내세웠다.

이번에 선보인 새 제품은 겉모습에서도 사소하지만 다른 시도를 했다. 병뚜껑이 기존에는 그냥 금색이었다면 새 제품 뚜껑은 금색 줄과 짙은 갈색 줄이 교차하는 디자인이다. 병의 소재도 달라졌다. 특수 플라스틱이다. 두드려 보면 유리와 너무 비슷해 변화를 쉽게 눈치 채긴 힘들다. 유리보다 훨씬 강하고 무게가 가벼운 것이 장점이다.

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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