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장기신용은행 합병맞아 은행 짝짓기 교섭 분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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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국민.장기신용은행의 합병을 계기로 시중은행들이 합병을 위한 물밑교섭에 막바지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가 합병을 전제로 이달중 재정지원을 해주기로 한데다 경쟁은행들이 대형화 짝짓기를 잇따라 발표하고 나오자 위기감이 겹쳐 어떻게든 빨리 가시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도 총자산 1백조원대의 대형 선도은행 육성에 상당한 집착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 빠르면 1~2개월내 추가 합병이 성사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급해진 조흥. 외환 = 금융감독위원회는 두 은행으로부터 10월까지 외자유치나 합병이 가시화되지 않을 경우 전 임원이 퇴진하겠다는 각서를 받기로 했다.

보람.장기신용은행 등 합병 파트너를 잃은 조흥은행은 다음달까지 새 합병 상대를 찾아야 할 입장. 조흥은행은 합병이 어려울 경우를 대비해 외자유치에도 다시 힘을 쏟는 등 양동작전에 나섰다.

외환은행은 합병에 상당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조흥.국민.한미은행 등을 합병상대로 검토중이라는 소문이 무성했으나, 외환은행은 이렇다할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일.서울은행 중 한곳을 인수하는 방안도 대안 (代案) 차원에서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일.서울의 합병무대 등장 = 정부는 두 은행중 한곳을 먼저 해외매각하기로 방침을 정한 상태다.

나머지 한곳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처리방안이 나오지 않아 은행권에서는 이를 합병대상으로 주목하고 있다.

현재 합병전략을 세워둔 은행들은 정부가 해외에 제시한 수준의 지원조건이라면 인수해도 부담이 크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10월말까지 해외 매각한다는 게 공식 일정이므로 그때까지는 일단 다른 합병 파트너를 구해 보고, 안되면 11월부터 제일.서울은행중 팔리지 않은 곳에 접근해 보겠다는 것이다.

◇신한.한미.주택도 변수 = 신한.한미은행은 대외적으로는 증자를 통한 독자생존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수익성을 무시한 채 규모를 키우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감독당국은 경쟁은행이 모두 대형화로 치닫고 있는데 두 은행이 지금 상태로 홀로 남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두 은행의 공식 입장과는 달리 합병바람에서 완전히 비켜나 있지는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주택은행은 당초 조흥은행과의 합병설이 나돌았으나 행장이 새로 취임해 진로를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김정태 (金正泰) 행장은 취임초 "시중은행으로 크려면 대형화가 필요하지만 주택금융 전문은행으로 남는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 고 말했다.

시중은행으로 대형화를 지향하기로 마음먹으면 대형합병의 주체로 나설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얘기다.

다만 아직 은행 내부의 의견수렴이 이뤄지지 않아 합병무대에 등장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외자유치후에도 합병추진 = 정부는 외자유치 및 합병을 전제로 이달중 선 (先) 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이에 따라 다음달부터는 은행들이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외자유치에 나설 수 있게 된다.

금융계에서는 은행들이 합작선을 경영에 참여시킬 경우 정부가 당초 의도대로 합병을 몰아가기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지원과 외자유치로 느긋해진 은행들이 합병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감위는 경쟁은행이 이미 대형화하고 있어 스스로 합병을 하지 않고는 배겨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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