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길잡이]프랑스 계몽주의 고전 '에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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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교사와 수험생들로부터 어떤 고전을 읽어야할 것인지 몇권 추천해달라는 전화를 간혹 받는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과 교사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인류가 남긴 많고많은 고전중에 출제가능성이 높은 고전을 선택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서울대의 경우 고전목록 2백선을 발표하기도 했었지만 이는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연세대등 대학들도 고교 교과서를 중심으로 수험생들이 읽어야할 고전을 선정하려 했고 심지어는 입시요강 발표때 출제범위를 특정 고전으로 명시하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과서에 언급된 고전만해도 그 범위가 매우 넓을 뿐아니라 특정 고전을 선택하면 이 또한 입시산업을 부활시키는 부작용을 낳게되어 결국 선정하지 못했다.

'에밀' 은 각 대학이 작성한 고전 목록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청소년기에 읽어야할 고전으로 추천되는 고전이다.

프랑스혁명 직전에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중의 한명인 루소가 문명비판을 시도하고 있는 이 고전은 인생관에 대한 인문학적 사색을 갖게 한다.

그에 따르면 유럽문명은 인간본성의 요구를 말살하고 인위적인 허위문화를 만들었다고 본다.

유럽문명이 가져온 인위적 획일성은 인간의 의무와 자연의 필요를 외면하는 대신 진정한 인간관계는 쇠퇴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같은 생각의 바탕에는 인간의 본성은 원래 선 (善) 하지만 사회생활을 거치면서 타락하게 됐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나의 욕구충족을 위해 타인을 도구.수단화' 하거나 자신이 만들지 않은 법에 의해 구속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난 인간들이 노예와도 같은 온갖 형태의 쇠사슬에 얽매인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인간은 불평등 관계에 의해 시달릴 뿐아니라 내적 본성과 의무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평등의 원칙에 입각해 자유로운 인간공동체를 형성하는 요소로서 '연민의 정' , 일반의지에 의해 영위되는 '도시공동체' 를 내세웠다.

홉스나 로크가 주장하듯 이기심이나 계산능력을 뜻하는 '이성' 이 아니라 '연민의 정' 이 인간행위의 기준이나 결집력이 돼야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를 통해 루소는 인간의 자연적 본성과 문명의 긴장을 극복하고 조화시켜려한 것이다.

여기에서 토론할 만한 몇가지 주제를 선정해볼 수 있다.

우선 인간은 과연 본성적으로 선한 것이며 사회속에서 타락한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오히려 인간은 본성적으로 야수적이며 사회속에서 문명인으로 길러지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물론 인간본성의 선.악 여부만을 묻는 질문도 가능하지만 그 자체로서는 풍부한 논의를 전개하기가 어렵다.

또 '연민의 정' 에 기초한 공동체가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물을 수 있다.

사회가 유지되려면 단순한 '연민의 정' 이상의 객관적인 질서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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