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하는 농촌드라마…'고유색 살린다' 안팎 새단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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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당장 갈 순 없지만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은 곳. 고향이 없는 순 서울토박이라 할지라도 팍팍한 도시생활에 지친 몸을 기대고 싶은 어딘가를 그리게 마련이다.

'물리적' 인 고향이 없는 이들은 그래서 때론 TV속에서 '귀소 (歸巢) 본능' 을 충족시키기도 한다.

바로 농촌드라마를 통해서다.

MBC 역대 최장수프로 '전원일기' .80년 10월 농촌운동가 김성재씨의 수필집을 모태로 해 '박수칠 때 떠나라' 로 출발, 올해로 18년째다.

13일부터는 작가와 PD를 교체해 이은정 - 최용원 콤비 체제로 간다.

흙과 가까운 삶을 사는 덕에 넉넉한 마음을 지닌 김회장 댁을 비롯해 일용네.복길네.수남이 엄마 등 '농촌 사람들' 의 정감어린 캐릭터가 양파 파동, 추곡 수매, 농촌 부채탕감 문제 등 시의성 있는 현안들과 맛깔나게 섞여지며 꾸준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KBS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도 30일이면 4백 회를 맞는다.

수많은 드라마들이 명멸하는 TV시장에서 이 두 상품이 살아남을 수 있던 까닭은 시청자들이 현실에서 찾기 힘든 따뜻하고 질박한 공동체적 가치를 TV를 통해 충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정체성의 위기도 있었다.

'전원일기' 의 경우 96년 갑자기 5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 영남.복길.수남이가 성인이 된 모습을 그리면서 농촌드라마로서 갖는 고유성이 잠깐 흐려지는 듯 했다.

지난해엔 서울에 정착하는 데 실패하고 양촌리로 이사온 상태 (임현식 분) - 민자 (김자옥 분) 부부가 합류하면서 코믹한 에피소드 중심으로 흐르기도 했다.

작가.PD가 바뀌는 8백77회부터는 다시 몸을 추스린다.

박복만 책임 프로듀서는 "초창기 '전원일기' 로 돌아간다고 보면 된다.

암울한 IMF시대에 '마음의 고향' 으로 기댈 수 있는 기둥같은 드라마로 만들고 싶다" 고 포부를 밝혔다.

도시와 근접한 '반농반도 (半農半都)' 얘기를 다뤄왔던 '대추나무…' 도 조만간 도시 색채를 희석시키면서 농어촌으로 회귀한다.

양근승 작가는 "따뜻한 인간애와 변하지 않는 무형의 정서를 전해주는 것이 사명이라면 사명" 이라고 말했다.

각박한 삶을 어루만지는 흙의 정서 - .도시와 농촌 사이 의사소통은 이런 식으로도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닐까.

기선민.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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