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노화랑 12일까지 '조선 백자 문방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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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아무리 컴퓨터 시대가 됐다 하더라도 문인들이나 대학교수의 양복 안주머니에는 근사한 만년필이 한 자루 꽂혀 있는게 보통이다.

학문이나 시문 (詩文)에 뜻을 둔 이상 이미 세상의 명리 (名利) 나 사소한 욕심 따위는 초월해 있지만 만년필 같은 문방구만큼은 예외다.

또 문방구는 서로 양해가 가능한, 이들 사회만이 누리는 최소한의 사치이기도 하다.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적어도 남아있는 백자 자료로 봐서 18세기 후반부터 문방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문인들 사회에 정착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 조선시대 이 시기 광주 (廣州) 분원리 (分院里)에서 만들어진 분원 백자에는 유독 필통.연적.붓 거는 필가 (筆架) 나 붓을 씻는 필세 (筆洗) 같은 문방구가 많이 남아있다.

도자기 전공자들도 다양한 문방구의 생산을 분원리 백자의 특징으로 꼽고 있다.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는 분원 백자 문방구의 다양한 면모를 소개하는 '조선백자 문방구' 전을 12일까지 열고 있다.

02 - 732 - 3558. 소개 중인 백자는 연적.필통.필가 등 50여점. 커다란 파초잎이 투각된 필통, 개구리 형상을 빌어 앙증맞게 만든 연적 그리고 아무런 문양과 장식 없이 동그랗게 형상을 빗어 마치 고추세운 무릎 마루처럼 보이는 백자원형연적 등이다.

모두 전세품 (傳世品) .1백년전 선비들의 사랑방에서 유일한 사치로 빛을 발했던 것들이 시대를 바꿔 콜렉터들의 개인 서재 깊숙이 모셔졌던 것들이다.

한국미 (韓國美) 의 예찬자였던 고 최순우 선생은 조선후기 백자문방구의 특징을 '조촐하면서도 넉넉한 멋에 있다' 고 했다.

너댓사람이 둘러앉으면 서로 무릎이 닿을 정도로 작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사랑방 치장은 단출하다.

보통 벽에 기댄 문갑 (文匣) 과 서가 (書架) 그리고 책을 놓고 보는 서안 (書案) 정도다.

콩기름을 먹여 반질반질해진 장판과 중후하게 가라앉은 목기 빛깔이 당시 사랑방의 컬러 코디네이션. 거기에 단 하나 희다 못해 푸르스름한 백자 연적이 문갑 (文匣) 위에 살짝 놓이면 저절로 방안 치장의 액센트가 되었다.

방에 들어서는 사람은 자연 이런 색채의 액센트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보면 엄격한 도학자 (道學者) 의 풍모를 지닌 선비라도 자그만한 백자 물건에 애정이 담기지 않을 수 없는 법. 노화랑에서 소개 중인 백자 문방구는 거의 분원리 백자가마에서 만든 것이다.

분원리 백자의 특징은 푸르스름한 청백색. 반면 한두점 소개된 금사리가마는 우유빛처럼 눈처럼 희다.

금사리 가마와 분원리 가마의 백자가 이처럼 다른 것은 백자 만드는 흙 (태토)에 포함된 철분의 양의 차이. 태토의 주성분인 규석과 알루미늄과 함께 녹으면서 우유빛이 되기도 하고 청 (靑) 백색이 되기도 하는 조화를 이룬다.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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