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이대와 미인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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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6.25전쟁이 끝나지 않은 50년대 초의 피난 시절 부산의 다방가에서는 정체가 분명치 않은 한 여인이 'MQ 아무개' 라 서명한 쪽지를 아무에게나 돌리며 다닌 일이 있었다고 한다.

쪽지를 받은 사람이 "MQ가 뭐냐" 고 물었을 때 여인이 보일 듯 말 듯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이화여자대학교 메이 퀸의 이니셜" 이라 대답하면 한결같이 깜짝 놀라며 선망의 표정을 지었다는 것이다.

진짜 메이 퀸인지 아닌지, 목적이 무엇인지 따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초창기부터 70년대 후반까지 존속했던 이대 메이 퀸 행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이대의메이 퀸 선발은 '균형 잡힌 훤칠한 몸매와 지성적 용모' 외에 품행.성적까지 중요시했기 때문에 보통 미인대회와는 성격이 다소 다르지만 대중사회에서는 메이 퀸을 '재색 (才色) 겸비한 이대 최고의 미녀' 로 인식했다.

그래서 학교내에서는 최고 미녀를 선발하면서 바깥사회의 미인대회에 참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냐는 견해도 있었다.

79년의 재학생 여론조사에서 75%가 메이 퀸 행사 존속을 반대했던 것도 얼마간 그런 감정이 작용한 결과로 보여진다.

재학생의미인대회 출전을 당초부터 철저하게 봉쇄한 사람은 22년간 총장직에 있었던 김활란 (金活蘭) 박사였다.

"학문을 탐구해야 할 지성인이 육체미에 중점을 둔 미인대회에 나가서는 안된다" 는 것이 이유였고, 그 불문율은 지금까지 지켜져 오고 있다.

59년도와 60년도에 거푸 미스 코리아로 뽑힌 불문과 오현주와 손미희자, 78년도 미스코리아로 뽑힌 대학원 무용과의 손정아 등은 모두 학교를 자퇴하지 않으면 안됐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법률도 수시로 바뀌는 판국에 불문율이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성역 (聖域) 일 수 있을까. 이대는 이미 지난 96년 개교 이래 처음 기혼 (旣婚) 총장을 선출함으로써 불문율을 깬 바 있다.

엊그제 열린 처장단회의에서는 '98 한국 슈퍼엘리트 모델 선발대회'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을 앞둔 독문과 재학생 문제를 논의한 끝에 앞으로 재학생들의 미인대회 참가를 허용키로 했다니 격세지감 (隔世之感) 이 든다.

"화려한 무대에 서면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잃기 쉽다" 는 보수파들의 우려를 학생 미녀들 자신이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남은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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