웟슨 드라마‘노인과 골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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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얘기가 아닐 수 없죠, 안 그래요(Fantastic story, aye)?”

지금으로부터 32년 전 스코틀랜드 턴베리 링크스 골프장에서 톰 웟슨이 우승하는 순간을 지켜봤던 한 진행요원이 있었다. 아직도 진행요원으로 일하는 그는 페어웨이의 가장자리에 서서 심한 스코틀랜드 사투리로 “시간을 잃어버린 느낌”이라고 말했다.

톰 웟슨이 19일 브리티시 오픈 3라운드 16번 홀에서 퍼팅에 성공한 뒤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턴베리 AP=연합뉴스]


웟슨(60·미국)이 제138회 브리티시 오픈(일명·디 오픈 챔피언십)을 ‘꿈의 드라마’로 만들었다. 19일(한국시간) 오후 스코틀랜드 에어셔의 턴베리 링크스 에일사 코스(파70·7204야드)에서 계속된 대회 최종 4라운드. 전날 4언더파 단독선두로 뛰어올랐던 웟슨은 20일 오전 0시10분 현재 8번 홀까지 버디 1개, 보기 2개로 1타를 잃었지만 중간 합계 3언더파로 선두 리 웨스트우드에게 1타 뒤진 단독 2위를 달리고 있다. 4라운드가 모두 끝나야 우승자가 결정되지만 웟슨은 이미 골프 팬의 마음속에 승자로 기억되고 있다.

웟슨은 1977년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당시 그는 당대 최고의 골퍼였던 잭 니클라우스(미국)와 챔피언 조에서 맞붙어 ‘백주의 결투(Duel in the Sun)’로 이름 붙은 명승부를 연출했다. 두 선수는 3라운드까지 똑같은 스코어(70-68-65)를 기록했고 마지막 날도 16번 홀까지 동타였다가 웟슨이 17번 홀 버디로 앞서나갔다. 마지막 18번 홀에서 니클라우스는 10m 버디로 다시 동타를 만들며 웟슨을 압박했다. 하지만 웟슨은 60㎝ 버디 퍼팅을 넣어 니클라우스를 1타 차로 꺾고 신승했다. 이 승부를 기억하는 올드 골프팬들의 가슴은 지금 벅찬 감동으로 물들고 있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약간 눈물이 났다”는 니클라우스는 “우리는 모두 그의 우승을 기원하지만 이미 그는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고 32년 전 라이벌을 치켜세웠다.

정작 웟슨 본인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아마 첫날 사람들은 ‘웬 노인이 반짝하는군’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이틀째도 ‘그런가 보다’ 했겠지만 오늘은 ‘이 늙은이가 우승할 수도 있겠는데’라고 생각하지 않겠느냐”면서 “내일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최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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