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자리 잃어가는 TV어린이프로 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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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특종 오늘의 토픽' '화제집중 생방송 6시' (MBC) '특급 연예통신' (SBS) .이른바 TV의 어린이 시간대라는 오후 5시~7시의 프로그램 들이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어린이와는 거리가 멀다.

한 때 MBC '호랑이 선생님' 같은 어린이 드라마나 KBS '모이자 노래하자' 등의 어린이 오락프로가 넘쳤다.

인형극도 전성시대가 있었다.

그러던 게 조금씩 줄어들더니 올초부터 아예 사라졌다.

지금은 공중파 3사를 통틀어 유아용 프로 (KBS 'TV 유치원' MBC '뽀뽀뽀' 등) 와 만화뿐이다.

10월의 가을개편에서도 어린이 프로를 늘리려는 움직임은 없다.

어린이프로 '퇴출' 의 이유는 시청률. 게다가 붙는 광고의 종류도 장난감.과자 등으로 극히 제한돼 방송사로서는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린이 프로를 외면하데는 반발이 크다.

올해 초 한 방송사가 어린이 프로를 폐지했을 때 YMCA 시청자 시민운동본부가 "공익성을 무시한 처사" 라며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어린이 시간대를 걸맞지 않는 프로가 차지한 때문에 문제점도 종종 드러난다.

심지어 MBC '화제집중…' 은 저녁 6시에 올초 클린턴 스캔들을 다루며 성행위를 묘사하는 말까지 내보내기도 했다.

방송사의 외면이 계속되다보니 어린이프로의 어려움이 계속된다.

그나마 있는 프로조차 자진해 맡으려는 PD가 없다.

유아용 프로를 만든지 2년이 채 못된 PD조차 "너무 오래 했다" 고 하는 정도다.

어린이 교육에 도움이 되는 방송을 만든다는 사명감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물론 밖에서도 푸대접이다.

아이들의 시선을 끌어보려 유명 연예인의 출연도 가끔 섭외하지만 "내가 왜 유아 프로에 나가느냐" 는 쌀쌀한 거절이 대부분이라고 제작진은 한탄한다.

이래저래 시청률을 올리기는 힘든 상황. 그러니 PD가 제작비를 늘려달라고 방송사에 요청하기도 힘들다.

결국 방송사의 투자는 점점 축소되는 악순환이 거듭되는 상황이다.

TV에 볼 것이 없으니 어린이들은 쇼.오락 프로에 몰입한다.

당연히 동심을 아름답게 가꿔줄 동요보다 유행가를 부르고 다닐 수 밖에 없다.

방송사와 기성세대가 그런 환경을 조장했다하더라고 할 말이 없지 않을까. 문화관광부는 내년부터 TV에서 청소년 교양 프로그램을 일정비율 이상 내보내도록 의무화할 계획이다.

이렇게 '코 꿰기' 전에 가을 개편부터 스스로 나서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방송사의 노력이 아쉽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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