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읽기 BOOK] 무농약 사과 재배, 눈물과 땀의 10년 드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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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기적의 사과
이시카와 다쿠지 지음
이영미 옮김, 김영사
1만1000원

한 입 베어물면 ‘저절로 눈물이 날만큼’ 맛있는 사과다. 게다가 오래 두어도 썩지 않는다. 반으로 갈라 2년간 보관해도 연한 붉은 색을 띠며 오그라들 뿐 특유의 향기는 여전히 강렬하다. 인류가 100년 이상 잃어버렸던 ‘원시 사과’의 본모습이요 참맛이다. 기무라 아키노리(60)라는 일본의 농부가 10여 년 각고의 노력 끝에 무농약 사과 재배에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은 그 자체가 드라마다.

사과는 나이가 많다. 스위스의 4000년 전 유럽 원주민 유적에서 탄화된 사과가 발견된 적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사과는 주로 19세기 미국에서 집중적으로 품종을 개량한 결과물이다. 열매는 커졌지만 사과나무의 생명력은 약해졌다. 다량의 농약에 의존해야 한다. 저자는 이런 현대 사과는 “화학제품이나 다름없다”고 단언한다.

기무라는 대대로 사과 재배를 하는 농가에서 태어났다. 우연히 일본 자연농법의 선구자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책을 읽고 감동받아 무농약 사과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해충 탓에 매년 실패의 연속이었고, 800 그루의 사과나무들은 서서히 시들어갔다. 마늘·고춧가루·간장·된장·소금·우유…. 농약을 대신하려고 안 써본 재료가 없었다. 과수원이 황폐화되면서 생활고는 극에 달했다.

1985년 7월31일, 기무라는 자살할 생각으로 밤중에 밧줄을 들고 산에 올라갔다. 거기서 건강하게 잘 자란 도토리 나무를 본 순간 “문제는 지상이 아니라 땅속!”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본래의 건강함을 잃어버린 땅부터 원시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과수원에 콩을 심고 잡초가 무성하게 방치하자 신기하게 나무가 기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땅’에 눈을 돌린 지 3년째 되던 해에 과수원에 7송이의 사과꽃이 피었다. 수확한 열매는 두 개. 기가 막히게 맛이 좋았다. 드디어 해낸 것이다. 다른 사과나무는 뿌리가 몇m에 불과하지만 기무라의 나무는 20m나 뻗어서 태풍이 불어도 끄떡하지 않는다. 기무라의 사과는 요즘도 “맛이라도 보게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한다.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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