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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체제 변화론’의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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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흥미로운 것은 세미나마다 질의와 응답이 판박이란 점이다. 세미나의 주제와 발표자는 조금씩 다르지만 발표가 끝나면 “북한의 체제 변화(regime change)가 언제, 어떤 식으로 올 것이냐”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답변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전문가들은 “그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가정만 할 뿐이지요”라고 운을 뗀 뒤 소련 체제나 인도네시아 수카르노의 몰락 사례를 거론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 보도가 북한 체제의 변화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 것은 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2002년 당시 부시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거론하면서 나온 ‘북한 체제 변화 유도론’과는 거리가 있다. 특히 워싱턴의 최근 관심엔 체제가 바뀌기 전에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전제가 깔려 있다. 한 세미나에서 무시아 알라가파 동서센터 수석연구원은 “북핵 해결을 위해선 북한의 정권 교체도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1989년 영변의 비밀 핵시설 사진이 세상에 알려진 뒤 한·미는 꼭 20년간 북한과 협상을 해왔다. 그동안 한국에선 5번, 미국에선 4번 정부가 바뀌었다. 협상 틀도 남북 회담, 북·미 회담, 4자회담, 6자회담으로 변경됐다. 북핵의 종국적 해결을 담은 합의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북한의 핵무장은 쉬지 않고 계속되는 ‘되돌이표’였다. 결국 종전 같은 협상으론 북한의 핵 개발을 막을 수 없다는 회의감과 짜증이 확산된 것이다.

미 정부 분위기도 확연하게 바뀌었다. 3년 전인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실패한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부시는 임기 후반 내내 대북 협상에 매달려야 했다.

하지만 최근의 2차 핵실험에 대한 비난은 북한에 집중됐다. 폭스뉴스의 최근 여론조사에선 ‘더 강한 대북 제재가 필요하다’는 쪽에 69%의 미국인이 손을 들었다. 15일 국무부 브리핑룸엔 오바마 정부의 대(對)한반도 정책 책임자들이 한꺼번에 출동해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제재는 계속된다”고 되풀이했다. 맨스필드 재단의 고든 플레이크 소장은 사석에서 “약속하고, 합의를 깨고, 그래도 대가를 치르지 않는 과거의 협상 방식은 이젠 곤란하다”고 전했다. 같은 북한 체제 변화론이지만 7년 전과 지금은 내용과 해법이 확 달라졌다. 협상에서 압박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한국으로서도 한층 정교하고 다각적인 대응전략을 가다듬을 때다.

최상연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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