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족집게 과외'는 불치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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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 강남 일대에서 성행하고 있는 고액 족집게 과외에 사회지도급 인사들이 대거 관련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명단만 봐도 서울대 총장과 문단 (文壇) 의 최고 원로, 대학교수 등이 포함돼 있고 1인당 최고 8천만원의 거액이 오갔다니 분노와 절망, 허탈감을 금할 수 없다.

또 수사가 확대될수록 과외 학부모 중 유명인사들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니 궁금하던 명단 공개가 차라리 두려울 지경이다.

서울대 총장은 한마디로 모든 교육자의 표상 (表象) 이 돼야 할 자리다.

또 최근에는 교육개혁.대학개혁까지 앞장서 이끌어 왔다.

무엇보다 교육계 최고의 지도급 인사가 다른 일도 아닌 자녀의 고액과외 문제로 불명예 퇴진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회적.국가적으로도 큰 불행이다.

고액과외는 돈으로 성적을 사는 것과 다름없다.

그 병폐가 크기 때문에 흔히 망국병 (亡國病) 이라고 부른다.

비용이 많이 들어 공직자 등의 부정부패나 온갖 비리의 원인이 되기 일쑤다.

특히 족집게 과외가 성적 향상 효과도 없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윤리적으로도 결코 자녀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돼 온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인.문화인들까지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과외에 대한 우리의 도덕 불감증이 얼마나 깊게 자리잡고 있는가를 다시 실감하게 된다.

적발된 고액과외 사건은 학교 교사와 학원 강사, 학부모와 학생, 교육청 등이 어우러져 빚어진 총체적 비리다.

담임교사가 학부모에게 고액과외를 권장하고 학원으로부터 거액의 소개 수수료를 챙겼다는 것은 이미 교사이기를 포기한 교육 브로커와 다름없다.

교사가 소개한 고액과외를 하면 왜 내신성적이 올라가고 학교 시험점수가 잘 나오는지 알만한 일이지 않는가.

또 '내 자식만은…' 하는 학부모의 비뚤어진 일류병 (一流病) 도 문제거니와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번번이 소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는 교육청 등 감독관청은 그동안 도대체 무얼했는지 답답하다.

고액과외, 족집게 과외가 이번에 적발된 학원 한군데만의 일로 보기는 어렵다.

차제에 수사를 확대해 불법 과외를 뿌리뽑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특히 관련 교사나 학부모의 명단 공개와 과외비용 자금추적 등 다시는 불법과외를 할 엄두를 못 내도록 극약처방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같은 고통을 겪고서도 고액과외를 추방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아울러 교육부도 책임을 통감하고 보다 실효성있는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여기에 학부모와 일선 교사의 의식전환이 병행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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