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바람 갑자기 일어 바다를 뒤집으
니
하늘과 물이 서로 붙어 캄캄해 진다.
만 송이 은산 (銀山) 은 낮아졌다 다시
일어서고
백 가지 천 가지 우레 북은 한 소리로
어울린다
부상 (扶桑) 떠나갈 듯 지축이 흔들리고
용왕은 궁전이 무너질까 걱정이리라
- 고려 박효수 (朴孝修.?~1377) '흥해 송라 도중 바다를 보며'
한국시가 중에는 이런 우렁찬 낭만주의 시가 드물다.
많은 시인은 지나치게 낭만에 묻히는데 시 자체로 형상화되는 데는 미치지 못하는 일이 적지 않다.
이 성난 바다를 노래한 고려 시인에게는 그 황량한 파도들을 '만 송이 은산' 으로 말하고 그 파도치는 소리를 천 가지 우레 북으로 노래하는 사내다운 비유가 동해의 극치에 딱 맞아떨어진다.
고은 <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