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기 왕위전]조훈현 - 이창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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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상책은 敵에 의지하기

제5보 (89~105) =국면은 흑 우세. 지금 백 두점과 흑 두점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 대목의 접전이 앞으로 전국의 흐름을 좌우할 것이다.

흑은 어떤 태도로 나가야 할까. 하책 (下策) 중 하책은 '가' 또는 '나' 로 붙여 삶을 도모하는 것이다.

중책은 '다' 와 같이 중앙으로 밋밋하게 달아나는 것. 상책은 무엇일까. 좌측 백진은 이미 굳어져 더 굳혀준들 아까울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곳에 기대 두터움을 확보하는 방안이다.

바둑에선 적에 기대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이야말로 고급의 병법이 아닐 수 없다.

89로 기대자 90으로 반발. 李왕위는 여기서 과감하게 91로 뚫고 93 끊었는데 심오한 수읽기의 힘이 없이는 감행할 수 없는 모험이다.

두려운 것은 바로 '참고도' 백1의 반발이다.

흑은 귀에서 삶을 도모하겠지만 바깥쪽의 흑은 쑥밭이 되고 만다.

더구나 귀는 완생도 아니며 백A면 패가 된다.

그렇다면 曺9단은 왜 94로 물러서고 말았을까. 아마추어적인 눈으로 보면 '참고도' 는 백이 좋다.

그러나 좀더 살피면 '참고도' 는 백이 나쁘다.

귀는 패인데 팻감은 흑이 좋으니 잡지 못한다.

20여집의 실리가 날아갔다.

또 바깥쪽은 B와 C 두곳을 동시에 둘 수 없으니 집이 될 것 같지 않다.

기분만 그럴싸할 뿐 실속이 전혀 없는 것이다.

103에 이르러 李왕위는 백 두점을 가만히 놔둔 채 두터움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曺9단에겐 이 두점이 부담이지만 이곳에서 더 머뭇거릴 여유가 없어 강경하게 104로 전향한다.

박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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