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한나라당 비자금 수사 공개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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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여권의 한나라당에 대한 사정 (司正)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포문은 국민회의 김영환 (金榮煥) 의원이 열었다.

그는 2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기아.청구 비자금의 구여권 (舊與圈) 유입 의혹' 을 제기했다.

여권은 이어 27일엔 한나라당 이신행 (李信行) 의원 체포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金의원의 발언은 특히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이란 공개화된 형식으로 언급됐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金의원이 대정부질문을 하기 위해 조사한 과정을 들여다보면 여권 핵심부의 심상찮은 기류를 읽을 수 있다.

당 정세분석위원장인 金의원은 발언에 앞서 사정당국의 고위층 및 검찰 관계자를 접촉, 상당 부분을 확인했으며 여당 고위 당직자들과 사전조율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여권 핵심부는 金의원을 은근히 '격려' 했다는 얘기다.

여권 실세 (實勢) 중 한 사람은 이와 관련, "앞으로 검찰수사 발표를 지켜보면 알 것" 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金의원의 발언은 홍인길 (洪仁吉) 전의원의 재구속, 이신행 의원 체포동의안 제출 등과 맥을 같이 한다" 는 것이다.

박상천 (朴相千) 법무장관도 26일 국회 답변에서 "청구 장수홍 (張壽弘) 전회장이 수십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확인하고 사용처를 수사 중" 이라며 "다른 사람도 수사 중이지만 아직 당사자에게 확인하지 못했다" 고 밝혔다.

金의원의 발언에 '내사 중' 이란 말로 화답한 셈이다.

이는 검찰수사 과정에서 정치권에 대한 비자금 제공 내역이 상당부분 밝혀지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金의원의 발언 가운데 "張전회장이 (구여권) 대선후보의 자금관리책인 모 변호사와 모 의원 등 7명의 자금관리책에게 수십억원을 전달했다" 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명예총재를 직접 겨냥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물론 검찰조사에서 이 대목이 드러난다 하더라도 극도로 민감한 대선자금 부분을 과연 문제삼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무도 이 문제에 관한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은 한나라당 총재 경선의 유력한 후보인 李명예총재에게 "여권이 칼자루를 잡고 있다" 는 점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었는지 모른다.

거명되는 정치인 대부분이 李명예총재 측근 또는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이란 점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또 한나라당 내부에 일고 있는 '제4 교섭단체' 구성 움직임과 관련, 탈당의 명분을 제공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신행의원 체포동의안 제출도 한나라당의 도덕성을 추락시켜 여권의 정계개편 시도에 대한 반발강도를 낮추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김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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