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헌법을 지켜 국론 통일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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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당시의 국회의원들은 일부이지만 애국하는 데 돈 받을 일 없다고 하여 세비까지 반납하는 형편이었다. 오늘의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대표라고 하여 최고의 보상을 받으면서도 당파의 이익에 얽매여 허송세월을 하고 있기에 안타까울 뿐이다. 헌법을 지켜 법률을 제정하고 정부를 견제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당리당략에 따라 국회를 등지고 거리에 나서는 것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것이다.

우리 헌법은 대표제 민주정치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하나 국민 개개인이 주권자인 것이 아니고 국민 전체가 주권자이며, 그 주권은 국민의 대표자인 대통령·국회의원·공무원들에 의해 행사된다. 국회의원도 공무원이고, 공무원은 전체 국민의 종복으로서 국민 전체에 대해 봉사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정당에 소속돼 있기는 하나, 당파적인 이익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국민을 위한 것인가를 판단해 양심에 따라 활동해야 한다.

민주화된 뒤 일부 시민들은 걸핏하면 집단행동으로 나서며, 불법시위를 일삼고, 정치적 파업까지 자행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이다. 헌법은 국민의 생명·존엄·자유·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구성하고 상호 견제·균형하게 하고 있다. 시위꾼들은 집회 참여자가 주권자인 것처럼 행세하나 진짜 주권자들은 자기 생업에 충실한 일반 서민들이다. 국민에게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는 있으나, 이 표현의 자유는 국가안전보장이나 질서유지·공공복리의 증진을 위해서 법률상의 제한을 받고 있다.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국가 목적은 국민의 생명·존엄·자유·평등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개인의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타인의 자유나 명예나 재산을 침범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타인의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는 사람은 법률에 의해서 처벌돼야 한다. 아무리 좋은 목적을 가진 집회라고 하더라도 폭력화하면 불법집회가 되는 것이요, 불법집회는 해산돼야 하고 처벌돼야 한다. 전직 대통령이나 현직 국회의원들조차 법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법을 만들고 성실히 집행해야 할 지도자들이 법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기 때문에 시정에는 무법천지고, 법보다 주먹이 앞서게 된다. 불법시위나 정치적 파업은 엄금돼 있는데도 떼쓰기로 군중을 동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일부 국회의원들조차 의사당을 팽개치고 길거리에서 시위나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대의기관은 다수결이 지배해야 한다.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에 의해 선출된 국회가 다수결 원칙을 무시하고 국회 밖에서 가투(街鬪)나 벌이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자기들만이 정당하다는 주장은 독선에 빠진 것이요, 토론과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원리를 팽개치고 극한투쟁을 하는 사람은 국민의 대표라고 할 수 없다. 다수결을 부정하고 생떼만 쓰는 국회의원들은 사직해야 할 것이다. 정당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고 종북(從北)활동을 하는 경우 그 정당은 해산돼야 한다.

21세기 한국은 이제 도약이냐, 몰락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국민 분열을 막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대장전인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 헌법의 권위를 세우고 법질서를 확립하는 것만이 조국의 분열을 막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첩경이다. 정부는 헌법질서와 법질서를 확립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