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인권위, 정치색 벗고 본연의 위상 되찾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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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전임 안경환 위원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수장이 새로 내정됐다. 우리는 이번 인사가 최근 이런저런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권위가 심기일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임기 만료를 3개월여 앞두고 조기 사퇴한 안 전 위원장은 이임사에서 “인권이란 좌도 우도 아니고, 정치적 진보도 보수도 아닌 보편의 가치”라는 소신을 지켜 왔다고 자부했다. 인권위 활동에서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다고도 했다. 그런데 현 정부가 ‘인권위=좌파 정부의 유산’이란 단세포적 정치 논리의 포로가 돼 조직 축소 등 보복적 탄압을 가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러한 발언 자체가 중립성을 띠어야 할 위원회의 위상을 흔들고 정치색 논란만 더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본다. 인권위는 지난해 촛불시위 때 시위대의 폭력성은 아랑곳없이 경찰에만 책임을 물은 권고안을 내놓으면서부터 구설에 올랐다. 지난달엔 집회·시위 때 죽창 같은 위험 물품의 제조·운반·보관을 벌하거나 복면 착용을 금지하려는 법 조항이 지나치다며 삭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는 이념적 편향성 시비를 자초한 결정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인권위 직원 중 상당수가 좌파 성향의 시민단체 출신이란 점에서 중립성 주장은 설득력을 잃어 왔다.

우리는 인권이 매우 소중한 가치라는 점, 또 공권력의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인권위의 독립적인 활동이 보장돼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인권도 법 테두리 내에서 보호돼야 하는 것이고, 인권위 역시 초법적 존재일 순 없다. 안 전 위원장은 지난해 말 선진화를 표방한 현 정부가 법치를 내세우며 인권을 후순위에 놓는다고 쓴소리를 했었다. 그러나 그 어떤 선진국도 인권 때문에 법치가 흔들리는 걸 방치하진 않는다. 인권 선진국 프랑스가 복면 시위를 엄벌에 처하는 조치를 내놓은 건 그래서다.

우리는 그간 장애인과 외국인 노동자, 정신질환자 등 우리 사회의 약자를 보듬어 온 인권위의 공적을 높이 산다. 새 위원장을 맞은 인권위가 정치색을 벗고 그 같은 본연의 업무에 더욱 충실하라는 것이 국민의 염원이자 우리의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