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되어 망월동 찾은 DJ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26일 광주시 망월동 5.18묘역을 참배했다.

현직 대통령으론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18년 만에 처음이다.

전임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도 망월동 참배를 시도했으나 광주 시민들이 받아주지 않았다.

金대통령은 지난해 5월 야당총재 자격으로 망월동을 찾은 적이 있다.

성역화사업 준공식 참석을 위해서였다.

당시 金총재는 방명록에 '영원한 승리' 라고 썼다.

이제 스스로 승자가 돼 다시 찾은 것이다.

그러나 金대통령은 이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명록에도 '1998년 8월 26일 대통령 김대중' 이라고만 기록했다.

잠시 상념에 젖는 모습만 언뜻 비쳤다.

이 자리에서만큼은 말이 필요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날 행사가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도 원치 않았던 것 같다.

이미 그 가해자들을 자신의 손으로 사면한 金대통령이다.

金대통령은 대신 하고 싶은 말을 전남도청 업무보고 자리에서 했다.

金대통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성격을 규정했다.

비폭력.준법.자유민주주의 수호.대화.반공 등 5대 정신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항상 광주정신을 받들어 대통령으로서 임무를 바르게 수행해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겠다" 고 다짐했다.

특히 金대통령은 "모든 노력을 다해 악마의 주술처럼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는 지역주의를 종식시키겠다" 고 약속했다.

업무보고장은 돌연 숙연해졌다.

金대통령은 광주지역 인사들과의 오찬에서도 감사의 말을 했다.

"망월동을 참배하고 영령들 앞에 섰을 때 오늘날 이 정도의 민주주의를 향유하고 50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큰 힘이 여기에서 나왔다고 생각했다. "

金대통령은 그러면서 다시 한번 "5.18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초이성적.초도덕적 투쟁이었다" 고 강조했다.

한편 金대통령을 맞는 광주 시민들의 열기는 앞서의 목포만큼이나 뜨거웠다.

金대통령은 전날 환호에 대한 자신의 답례가 미흡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金대통령은 헬기 이용을 취소시키고 차량을 이용해 망월동으로 이동했다.

특히 미제 방탄차량이 경호상 이유로 유리창이 조금밖에 내려오지 않았던 게 몹시 아쉬웠던지 다른 차 (벤츠) 를 이용했다.

경호실은 전날 밤 벤츠 두대를 서둘러 목포에 추가시켰었다.

金대통령은 경호원들의 조바심을 아랑곳하지 않고 유리창을 아예 다 내린 채 열광하는 광주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망월동 묘역에선 달려드는 시민들과 잠시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때문에 전날과 마찬가지로 일정이 30분씩 지연됐다.

이연홍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