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성희롱 금지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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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96년 4월 미국 일리노이주 (州) 의 일본 미쓰비시 (三菱) 자동차 현지공장은 여성근로자에 대한 성희롱을 방치해 공민권법을 위반한 혐의로 제소당했다.

남자 3천2백명, 여자 8백명이 근무하는 이 공장에서 남성근로자는 여성근로자를 상습적으로 키스 또는 애무했고, 작업장 안에 음란사진을 붙이거나 상소리를 했으며, 때론 노골적으로 성행위를 요구하기도 했다.

여기에 회사 간부들까지 가담했다.

미쓰비시는성희롱 사실을 부인하면서 미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 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2년에 걸친 재판 끝에 지난 6월 여성근로자 3백명에게 3천4백만달러라는 거액의 보상금을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미쓰비시는 지난해에도 같은 공장의 여성근로자 27명에게 9백50만달러를 성희롱 피해보상금으로 지불함으로써 '성희롱 기업' 이란 딱지가 붙었다.

미국은 성희롱사건 소송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지난해 고용기회균등위원회에 제소된 성희롱사건은 1만5천8백90건이다.

91년의 두배나 되는 숫자다.

직장남성이 성희롱사건 소송에 걸려들면 개인적 망신과 함께 엄청난 위자료를 물기 때문에 성희롱사건은 공포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성희롱사건은 늘고 있다.

직장들 가운데 성희롱사건에 가장 취약한 분야가 바로 군이다.

지난해 미 육군 조사에 따르면 여군의 7%가 영내 (營內)에서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15%는 성적 위협을 경험했으며, 47%는 자신이 원치 않는 성희롱을 받았다고 답했다.

96년 9월 메릴랜드주 애버딘 여군훈련소에서 여군 19명이 장교와 하사관에게 성폭행당한 사건이 발생, 미국이 발칵 뒤집힌 적도 있다.

성희롱사건빈발은 미군의 전투능력 유지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여군은 전체 미군병력 1백40만명의 15%를 차지하며, 특히 신병의 20%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존재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여군에 대한 성희롱사건이 자주 발생해 여성들이 군대를 기피하자 미군 당국은 '여군 모셔오기' 특별작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23일 국방부는 '성희롱 방지지침' 을 공개했다.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군내 여성인력의 인권보호와 건전한 군대문화 정착을 위한 조치다.

성희롱은 아직 우려할 수준이 아니더라도 외국의 예에서 보듯 경우에 따라선 군 전체가 곤욕을 치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소홀히할 수 없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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