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그린수기]34.레드베터 지도에 감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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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브리티시여자오픈이 끝나고 올랜도 집에 돌아와 3일 동안 푹 쉬었다.

10여일 동안 보지 못했던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애완견 해피를 안고 혼자서 한참 수다를 떨기도 했다.

지난 몇달 동안의 일을 돌이켜 보면 커다란 회오리 바람이 지나간 듯하다.

우승과 부진, 갤러리들의 함성과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마이크, 수없이 찰칵대는 카메라 셔터소리.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나는 다시 레이크 노나 골프장의 연습장에 섰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건 이곳에서 연습할 때만큼은 언제나 마음이 평온해지고 처음 이곳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기분으로 돌아간다.

대회에 출전하는 요즘에는 레드베터 코치에게 보통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 동안 레슨을 받는다.

그의 레슨은 늘 변함이 없다.

지난 훈련결과를 토대로 진도를 정하고 그 진도에 맞춰 1주일의 시간표를 짜는 일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의 레슨 방법은 무척 과학적이고 철저하다.

97년 1월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레드베터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나의 스윙을 비디오로 찍는 것이었다.

그것도 전후좌우 네 방면에서 찍었다.

초기에는 매일같이 찍었다.

그리고는 그 테이프를 스윙 분석기를 통해 일일이 체크한다.

백스윙.임팩트.피니시 과정에서 몸의 중심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레드베터는 "정확도가 떨어지는 원인은 스윙중 몸이 좌우로 너무 많이 움직이기 때문" 이라 진단하고 그 점을 집중적으로 교정해주었다.

샷의 정확도가 높아진 것은 이같은 과학적인 분석과 훈련 덕분이다.

"골프를 처음 배울 때부터 이렇게 훈련받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장 큰 변화는 어드레스에서 잔뜩 들어간 힘을 빼는 것이었다.

덕분에 어깨 회전과 스윙 전체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나의 스윙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남성적인 힘과 여성적인 유연성이 합쳐진 나의 스윙에 레드베터는 큰 만족을 표하고 있다. 내가 레드베터를 더 신뢰하게 된 것은 그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식이다.

골프의 요령이나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골프에 대한 자세, 정신력, 인격 등을 더욱 중요시하는 점이다.

골프는 정신적 수양없이 이뤄질 수 없는 스포츠라고 늘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스승과 제자 사이에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가 없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그러면 아무리 훌륭한 교습도 형식에 그치게 마련이고 결국 둘 다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다.

레드베터도 레슨 분야에서는 나 못지않은 프로다.

나만큼 많은 팬들도 있다.

나는 대회성적으로 평가를 받지만 가능성 있는 제자만 받아들이는 코치인 그로서는 제자를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평가도 달라진다.

레드베터와 나는 각자의 위치에서 최고를 이룰 꿈을 꾸고 있다.

레드베터는 나를 통해, 나는 그의 가르침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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