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신중치 못한 對러 처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과 상사원들은 요즘 한.러 관계 현안에 대처하는 정부 당국의 수준에 당혹하고 있다.

조성우 (趙成禹) 참사관 사건 당시 보여준 정부의 협상능력 부재와 일부 공무원의 기강해이, 비 전문가들의 주먹구구식 발언과 정책결정, 러시아 사회에 대한 정보 및 전략부재 등이 이번 러시아의 루블화 평가절하와 모라토리엄 선언 사태를 맞아서도 똑같이 재연되고 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우려다.

상황 발생후 국내 정치권은 즉각 대러 차관회수 방안을 촉구했고 정부는 양국간 채널을 총가동해 차관 조기회수와 현물상환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KOTRA) 는 수출상품의 선적을 당분간 중단하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을 공표했다.

이에 질세라 수출입지원업무를 맡은 은행들은 러시아은행들이 지급보증한 수출 신용장 (LC) 과 지불보증서 (LG) 는 아예 할인하지 않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러나 교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수출진흥을 책임진 기관이 어떻게 양국관계에 대한 고려없이 수출선적 중단을 권고하고 수출입업무를 지원하는 은행들이 다른나라 은행들과는 달리 무조건 "러시아 것은 할인을 안해주겠다" 는 식의 반응을 보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사실상 조기회수가 불가능해 몇년을 끌어온 경협차관 문제에 대해 마치 우리가 노력하면 조기상환이 가능한 것처럼 다시 거론해 한.러 양국을 자극하는 당국자들의 태도도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발표한 뒤 세계 어느나라도 이와 같은 반응을 공개적으로 내놓은 곳이 없다.

정부나 전문기관의 임무는 평상시보다 위기때 빛이 난다.

김석환(모스크바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