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훈 9단은 “그쪽은 이상하게 둘 곳이 없어요” 한다. 모를 소리다. 그러나 이런 경우가 자주 있단다. 백이 두면 다 좋은데 흑이 두려면 영 마땅찮은 경우 말이다. 가령 ‘참고도’ 흑1로 걸치면 2가 좋고 이어서 4를 당한다. 좋은 그림이 아니다. 그렇다고 흑1로 귀를 파고들자니 너무 비좁아 보인다. 그래서 고심 끝에 71로 두텁게 한 다음 73으로 움직여 나온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기야 이창호 9단이라고 해서 어찌 실리를 가볍게 여길 것인가. 그 피 같은 실리를 놔둔 채 71을 두는 이면엔 말 못할 아픔이 숨어 있는 것이다.
“진짜 실수는 이 수였습니다.” 박영훈 9단의 나직한 한마디가 귀청을 때린다. 그가 가리킨 수는 83이었다.
박치문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