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춘란배 세계선수권] 둘 곳이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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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 2국> ○·창하오 9단 ●·이창호 9단

제8보(71~83)=흑▲에 이어 71까지 두었으나 백은 별로 가렵지 않다. 우변 흑이 엷어질 가능성을 차단한 것은 사실이지만(그래서 두터움을 얻었지만) 눈에 보이는 이득은 소소해 보인다. 그에 비하면 72는 어마어마한 현찰이다. 차라리 ‘황금’이라고 표현해야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창호 9단은 이 길을 간다. 이건 말하자면 ‘운명’ 같은 것이다. 어떻게 말해도 변하지 않는 체질이고 성격이다. 그렇더라도 아쉬워 박영훈 9단에게 다시 물어본다. 흑▲와 백△의 교환, 그리고 71과 72의 교환은 너무 실속이 없지 않은가. 특히 71은 좌상이 크지 않은가.

박영훈 9단은 “그쪽은 이상하게 둘 곳이 없어요” 한다. 모를 소리다. 그러나 이런 경우가 자주 있단다. 백이 두면 다 좋은데 흑이 두려면 영 마땅찮은 경우 말이다. 가령 ‘참고도’ 흑1로 걸치면 2가 좋고 이어서 4를 당한다. 좋은 그림이 아니다. 그렇다고 흑1로 귀를 파고들자니 너무 비좁아 보인다. 그래서 고심 끝에 71로 두텁게 한 다음 73으로 움직여 나온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기야 이창호 9단이라고 해서 어찌 실리를 가볍게 여길 것인가. 그 피 같은 실리를 놔둔 채 71을 두는 이면엔 말 못할 아픔이 숨어 있는 것이다.

“진짜 실수는 이 수였습니다.” 박영훈 9단의 나직한 한마디가 귀청을 때린다. 그가 가리킨 수는 83이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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