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의 그린수기]24.레드베터,테스트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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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번주 브리티시여자오픈을 앞두고 나는 마음이 편하다.

휴식도 충분히 취했고 든든한 후원자 2명을 대동하기 때문이다.

한 분은 데이비드 레드베터 코치고 다른 한 분은 아버지다.

레드베터 코치는 현장에서 스윙을 직접 지도해주기 위해 따라나선다.

뒤모리에 클래식이 끝나고 7일 귀국한 아버지는 12일 영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요즘 내 체력이 떨어진 것이 안쓰러웠던지 한약을 준비해오신단다.

레드베터 코치와의 만남은 내가 진정 골프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다소 거칠었던 내 스윙이 정교해진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장타자에 속했다.

동료 여자선수 중 나보다 드라이브샷 비거리가 더 나가는 선수가 없었다.

그러나 방향성이 문제였다.

내가 미국에 건너와서 레드베터 코치에게 스윙 교정을 받은 뒤 몰라보게 좋아진 것이 바로 방향성이다.

레드베터 코치와의 '면접시험' 을 마무리하던 날 그는 내 스윙에 대해 몇가지 조언을 했다.

그는 내 백스윙이 너무 크기 때문에 방향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오버스윙으로 인해 몸의 균형이 무너지는 바람에 방향이 들쭉날쭉하다는 것이다.

그런 스윙으로는 미국 여자프로골프계에서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지 않아도 세계 유명선수들이 출전한 지난해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샷의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을 절감했던 나에게는 너무나 가슴에 와닿았다.

레드베터 코치는 "오버스윙을 하지 않아도 공을 더 멀리 날려보낼 수 있다" 며 나에 대한 테스트 결과를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나를 제자로 받아들이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좀더 면밀히 검토한 뒤 통보하겠다는 것이었다.

시큰둥한 채로 귀국한 나는 레드베터 코치의 제자가 될 수가 있을지 몹시 불안했다.

가능성이 없는 선수는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그가 포기할 정도라면 미국에 가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다행히 얼마되지 않아 삼성측으로부터 좋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레드베터 코치는 "스윙 리듬이 일정하고 기본기가 갖춰져 있어 틀린 것을 지적하면 정확하게 소화해낸다" 며 합격판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날 밤 아버지는 "세리야, 미국투어는 투지나 체력만으로는 안된다.

네가 대성하려면 과학적인 티칭이 필요한 거야" 하며 나를 격려해주셨다.

아버지의 품을 거의 떠나 본 적이 없는 나는 미국에 혼자 건너가서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나는 97년 1월 18일 레드베터 골프아카데미가 있는 올랜도의 레이크 노나 골프장에 도착, 본격적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우리 팀 (세리팀) 이 레드베터 코치에게 자그마한 도자기 하나를 선물로 건네자 그는 "세리가 첫 우승을 하는 날 이 도자기에 축하 술을 따라 마시겠다" 고 했다.

내가 L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하던 날 그가 정말 술을 따라 마셨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어쨌든 레드베터와의 만남으로 나의 스윙은 '한국의 스윙' 에서 '세계적인 스윙' 으로 서서히 다듬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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