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계 2차 간담회]정부 '빅딜' 재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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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현대.삼성 등 5대 그룹이 이달 말까지 빅딜 (대기업간 사업교환) 을 포함한 구조조정안을 마련키로 함에 따라 기업구조조정은 급류를 타게 됐다.

재계가 이처럼 예상보다 빨리 구조조정안을 내놓기로 한 것은 최근 정부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을 감지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달 26일 롯데호텔에서 가진 1차 정부 - 재계 모임에서 나온 재계측의 발언에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으면서도 일단 '자율추진' 에 무게를 두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제스처는 얼마 가지 않았고 이달 들어 연일 기자간담회 등의 형식을 빌려 "5대 그룹이 구조조정을 한 게 무엇이 있느냐"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 는 등의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며 압박을 가해왔다.

이같은 강경선회 배경엔 구조조정의 제도적 환경조성 (상호지급보증 축소.기업경영투명성 제고 등) 은 착실히 이뤄지고 있으나 핵심역량 배양을 위한 대기업 구조조정은 지연되고 있다는 청와대측의 강한 질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간담회에는 당초 김중권 (金重權) 비서실장이 참석, 빅딜 등 5대 그룹 구조조정에 대한 '분명한 뜻' 을 전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金실장은 결국 참석하지 않았지만 이 같은 의중은 경제장관들을 통해 충분히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5대 그룹으로선 더 이상 "우리에게 맡겨달라" 며 시간을 끌기 힘든 상황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

재계의 총본산인 전경련이 작업팀 (태스크포스) 을 만들어 적자 누적으로 부채가 과다한 기업, 수출경쟁력이 약한 기업에 대한 업계 자율조정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재계가 정부의 입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재계 관계자는 "구조조정을 조속히 매듭짓고 경제회생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정부의 의중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대기업간의 자율조정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고 주장했다.

정부는 재계가 8월말에 제출하는 자율구조조정 방안을 받아본 뒤 후속대책을 논의한다는 입장이다.

만약 자율적인 구조조정이 여전히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주거래은행과의 재무구조약정을 통해 금융을 봉쇄하는 등의 방법으로 압박을 가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정부가 극약처방을 쓰거나 재계가 끝까지 버틸 가능성은 거의 없는 듯싶다. 회생을 위해선 정부나 재계나 서로 상대방의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재경부 당국자는 "현재 주요 그룹들이 기아.아시아자동차 입찰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빅딜 추진이 어렵다" 며 "결국 이 문제가 매듭된 8월말 이후에나 빅딜이 구체적으로 추진될 것" 이라고 내다봤다.

박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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