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양쯔강 대홍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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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유역면적이 1백평방㎞가 넘는 하천만 5만개 이상인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치수 (治水)가 나라의 명운을 좌우하는 중요한 과제였다.

그에 관한 고사 (故事) 들도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대우 (大禹)치수' 의 설화다.

약 4천년전 요 (堯) 임금 때 툭하면 큰 물난리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손실이 초래되자 임금은 곤 (곤) 을 시켜 양쯔 (揚子) 강.황허 (黃河) 등 큰 강에 제방을 쌓도록 명령했다.

하지만곤의 방식은 주먹구구식이었기 때문에 애써 쌓은 제방들은 무너져내리기 일쑤였다.

감독권을 위임받은 순 (舜) 은 곤을 사형에 처하고 그의 아들 우 (禹)에게 치수를 맡겼다.

우는 정확한 측량에 따라 산을 깎고 막힌 수로를 뚫어 강물을 더 큰 강줄기로 인도한 다음 이를 다시 바다로 내모는 과학적 방식을 택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이 큰 공사는 장장 13년 만에 끝났고, 수로를 이용한 농업발전에도 크게 기여한 우는 후에 하 (夏) 나라의 첫 임금이 된다는 이야기다.

후세의 학자들은 당시 양쯔강과 황허 등을 소통시키는 데 필요한 공사량이 만리장성 (萬里長城) 을 축조하는 데 든 공사량의 4~5배에 이른다는 점을 들어 만들어진 이야기거나 과장된 이야기일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사실여부야 어떻든 자연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를 보여 줬다는 점만으로도 의의가 있다.

툭하면 물난리를 겪으면서도 사전의 치수대책에는 소홀한 오늘날의 인간사회에 귀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며칠 새 홍수와 태풍으로 양쯔강 일대에서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중국의 경우도, 수도권 일대의 이른바 '게릴라식 폭우' 로 인명과 재산의 손실이 막심한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재작년에 겪었던 상황의 되풀이라는 점에서 자연재해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무기력함을 새삼 절감하게 한다.

한데 최고 6백㎜ 이상 퍼부은 수도권의 엄청난 폭우는 초대형 고기압대와 저기압대, 그리고 양쯔강 기류가 삼각으로 부딪쳐 뒤섞이면서 발생한 것이라는데도 기상청은 다섯 차레 이상 수정예보를 내는 소동을 벌이고 있었다니 아무 것도 모르는 수재민들로서는 그야말로 '자다 벼락 맞은 꼴' 이다.

언제까지나 하늘만 원망하고 있어야 할는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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