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폭우 틈타 혼잡료 수입증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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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리산 대참사와 서울의 물난리 같은 재난에는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같은 재난을 예방하고 대처하는데는 최대한의 노력과 신속함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피해를 줄이기 위한 이같은 노력은 일부 시민의 몫도 있으나 대부분은 국가 등 공공기관이 떠안아야 할 책임이고, 수습과정에서 시민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점에서 4일 아침 서울 남산1호터널과 3호터널에서 있었던 반강제식 통행료 징수사태는 우리를 몹시 황당하게 한다.

이날 강남에서 차를 몰고 강북으로 출근하려는 시민들은 통행료를 징수하는 1, 3호터널 통과를 강요당했다.

2호터널과 삼각지 일대는 하수도 역류로 물바다가 됐고 우회도로인 소월길은 붕괴사고로 차량통행이 통제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민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2천원씩의 통행료를 물어야 했고, 바로 이 통행료 납부절차 때문에 차량은 장사진을 이뤄 출근길의 정체를 가중시켰다.

시민들이 분통을 터뜨린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치산치수 (治山治水) 를 잘 해야 하는 것은 예로부터 치국 (治國) 의 기본이고 도시에서의 치수는 배수 (排水)가 잘 돼야 한다.

2호터널과 삼각지에서의 하수도 역류는 바로 이 배수시설에 문제가 있음을 말하고, 소월길의 붕괴사태는 예방을 소홀히한 결과다.

비록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쏟아졌다고 하나, 그처럼 예방을 소홀히 한 잘못을 시민들에게 통행료징수라는 덤터기로 안겨준 꼴이 된 것이다.

대처에도 문제가 있었다.

서울시는 오전 9시쯤에야 통행료 징수를 유예할 것을 검토했으나 '곧 2호터널이 복구된다' 고 해 그냥 넘어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2호터널의 통행이 가능해진 것은 오전 11시40분이었다.

우리가 이 대처과정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폭우 - 하수도역류 - 통행불능' 에서 '통행료 징수유예' 까지의 전달.결정체계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돼야 하느냐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공직자사회 내부에서는 복지부동 (伏地不動) 이 아닌 낙지부동 (落地不動).신토불이 (身土不二) 라는 자조 섞인 유행어가 떠돈다고 한다.

땅에 떨어진 듯이 길게 엎드려 몸과 땅이 하나가 됐다는 말이라고 한다.

바로 기강해이를 스스로 인정하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행정은 서비스업종이고 그 공급자를 고용한 수요자는 바로 시민이다.

우리가 어찌 보면 작을 수도 있는 이 교통대란 상황에서의 통행료 징수사례를 통해 공직자의 일대 각성을 촉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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