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부장관 경질 배경]'망신외교'문책으로 매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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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개각과 관련, 'YS식의 잦은 개각을 않겠다' 는 기본방침을 강조하면서 "그래도 국민이 정 안되겠다고 하면 할 수 없다" (5월 10일 '국민과의 대화' 에서) 는 여지를 천명해 왔다.

4일 전격적으로 경질된 박정수 (朴定洙) 외교통상부장관의 경우 '정 안되겠다' 는 판정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朴장관은 직접 경질배경인 한.러 외무장관회담에서 적잖은 실수를 저질렀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프리마코프 장관이 외교관례를 무시하고 합의된 의제를 벗어나 "아브람킨 참사관의 재입국을 허용해달라" 며 엄포성으로 나왔을 때 냉정하게 이를 지적하고 반박하지 못한 채 끌려다니다시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朴장관은 취임 직후 "제네바 4자회담에서 북한측이 남북간 직접대화에 응하기로 했다" 는 부정확한 사실을 국무회의에 보고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외교가에서는 이같은 잇따른 실책이 朴장관의 외교 경험부족에서 나온 것으로 설명한다.

그런 점에서 외교전문가인 홍순영 (洪淳瑛) 신임장관의 임명은 외통부내에서 '적절한 인사' 로 환영받고 있다.

洪장관은 金대통령이 조각 (組閣) 당시부터 장관 내지 외교안보수석으로 마음에 담고 있던 인물이다.

문제의 불씨는 아직 남아 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외교통상부와 안기부간의 마찰이다.

안기부 요원은 통상 대사의 지휘를 벗어나 활동하며, 당연히 활동상황에 대한 보고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게 그간의 관행이다.

이번의 경우도 같은 문제점이 여러 곳에서 드러났다.

朴장관이 외무장관회담에서 망신을 당한 것도 안기부측과 러시아 정보당국간의 협의내용을 충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아브람킨 참사관의 재입국문제를 둘러싸고도 외통부와 안기부는 이견을 보여 왔다.

이같은 갈등과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외통부와 안기부의 업무협력관계를 분명히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洪신임장관은 이에 대해 "대외문제는 외통부 소관" 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는 대사시절 보고를 소홀히 하는 안기부 요원을 혼내는 등 '대사의 지휘권' 을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정보요원도 대사의 지휘를 받는 미국식 아이디어를 가진 그의 주장이 우리 현실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주목된다.

악화된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이와 관련해 이인호 대사의 경질 가능성도 점쳐져 왔으나 金대통령은 李대사에게 힘을 실어주도록 洪신임장관에게 당부했다.

경질은 없다는 단호한 표시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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