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 칼럼]정당민주화가 핵심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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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 사회에서 국회의원처럼 욕을 많이 먹는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국회가 두달여의 '식물상태' 끝에 가까스로 의장을 뽑았지만 아직도 일할 태세를 갖추자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할 판이다.

놀고 먹는 국회의원, 정쟁 (政爭) 을 일삼는 국회의원이란 부정적 이미지가 자꾸 굳어져만 가고 있다.

최근엔 시민단체가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국회공전에 따른 시민피해를 물어내라는 집단소송까지 제기했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불신이 이미 위험수위에 이른 감이 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의원들이 이런 욕을 먹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의원들이 이런 대접을 받는 나라가 과연 괜찮은 나라인가 하는 점도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의원들은 확실히 욕먹을 일을 많이 했다.

국민과 상관없는 자기들간의 정쟁.국정소홀.부패 등은 욕을 먹어도 싸다.

그러나 의원들이라고 정쟁을 하고 싶어하고, 국정을 소홀히 하고 싶어 소홀히 할까. 의원들은 오히려 국회가 열려야 발언도 하고 활동도 할 수 있고, 국회가 열려야 이름도 날리고 지역구 사업도 할 수 있다.

국회는 오히려 의원들이 더 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모두 2백99명이지만 평소 그런대로 이름을 날리고 활동이 국민에게 알려지는 의원은 아마 50명도 안될 것이다.

이런저런 감투를 쓰고 있는 의원이 그들이다.

나머지는 대체로 별 볼 일이 없다.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관심도 못끌고 일반에 알려지지도 않는다.

이들은 대부분 '새끼에 매인 돌멩이' 신세이기가 십상이다.

중요방침이나 정책은 총재나 간부가 결정한다.

이들은 결정과정에 낄 수가 없지만 결정사항엔 따라가야 한다.

따라가지 않으면 다음 공천이 위태롭고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이처럼 이른바 평 (平) 의원들은 평소 당에 묶여 독자적 활동의 무대가 없다.

고작 연구소.세미나 같은 걸 해봐야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특별한 일이 없고서는 신문에 이름 한번 날 기회가 없고 보궐선거때엔 동책 (洞責).면책 (面責) 의 선거운동원으로 동원된다.

정쟁도 국회공전도 평의원들이 하는 게 아니다.

당이 하는 것이다.

이번 국회의장 문제도 아닌말로 의원들로서야 朴씨면 어떻고 吳씨면 어떤가.

'우리편 의장' 고집은 정당 쟁패전 (爭覇戰) 일 뿐이다.

요컨대 나쁜 정당에서 좋은 국회의원이 나오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까 비난과 욕이 평의원들에겐 다분히 억울할 수도 있다.

지금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각종 개혁이 강도 높게 추진되고 있지만 정치개혁을 하지 않고는 진정한 개혁이 될 수 없다는 소리가 높다.

金대통령이 곧 과감한 조치를 취하리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새끼에 매인 돌멩이처럼 돼 있고 국회가 몇몇 정당보스에 의해 좌우되는 이런 상태를 그대로 두고는 어떤 정치개혁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국회를 국회답게, 의원을 의원답게 하는 개혁이 정치개혁의 가장 시급하고 기본적인 내용일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정당의 민주화가 필수적이다.

정당 민주화 없이 국회고 의원이고 제 구실을 할 수 없다.

사실 그동안 정당이야말로 우리 정치에서 비민주와 부조리의 온상이었다.

정당이 보스의 사당 (私黨).지역정당이 됨으로써 저질정치.소모적 대결정치.파당 (派黨) 정치의 주역이 되고, 그런 정당체제의 유지를 위해 공천장사.컴컴한 정치자금조달 등 정경유착과 비리의 중심이 돼 왔다.

우선 공천권.인사권부터 민주화해야 한다.

의원들을 묶고 있는 새끼를 풀고 본연의 일을 하게 하자면 상향식 공천제, 각급 당직의 선출제를 실시해야 한다.

그래야 의원들이 보스만 보고 뛰는게 아니라 국민과 당원을 향한 정치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국회의 연중활동, 당의 각종 회의의 활성화가 이뤄져야 한다.

보스와 몇몇 수뇌가 밀실에서 결정을 내려보낼 게 아니라 회의에서 토론 끝에 결정이 나와야 한다.

국회가 보스 마음대로 열렸다 닫혔다 해서도 안된다.

정치개혁을 두고 이런저런 소리들이 많지만 정당 민주화야말로 정치개혁의 핵심이다.

지금 우리가 사활 (死活) 을 걸고 추진하는 각종 경제개혁도 신뢰받는 국회가 있어야 성공이 좀더 확실해질 수 있다.

국회다운 국회가 개혁의 방향과 내용을 토론하고 검증한다면 그 과정에서 국민이 개혁을 알고 믿고 따라가게 됨으로써 국민적 뒷받침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다운 국회, 국회의원다운 국회의원이 나오도록 하는 정당 민주화가 시급한데 정계에선 왜 말이 없는가.

송진혁(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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