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행 옴부즈맨칼럼]종잡을 수 없는 '워크아웃'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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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즘 마치 상용어 (常用語) 처럼 신문에 등장하고 있는 게 '워크아웃' 이란 말이 아닌가 싶다.

이 말을 제대로 모르고는 우리나라의 금융정책이나 구조조정책을 이해할 수 없다고까지 일컬어지고 있을 정도다.

'워크아웃' 이란 이른바 미국 사람들의 속어 (俗語)에 속하는 말이다.

바야흐로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을 꾸려가려면 미국의 속어 하나라도 제대로 알아야 하는 세상이 되고만 셈이다.

'워크아웃' 의 유래와 개념에 대해선 얼마전 진념 (陳稔) 기획예산위원장이 미국의 유명 배우 제인 폰다의 몸매 가꾸기를 잭 웰치 GE회장이 원용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함으로써 시정 (市井) 의 화제가 된 바 있다.

'워크아웃' 이란 "한마디로 군살을 빼고 아름다운 몸매를 갖추는 것" 을 뜻하며 "이미 지난 80년대말 세계 최대 기업인 미국의 GE에서 결실을 본 구조조정방식" 이라는 이야기다.

한데 속어인 '워크아웃' 의 본래 뜻은 운동 또는 스포츠의 트레이닝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제인 폰다의 몸매 가꾸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미국 시민사회에 '운동' 이란 뜻으로 정착된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운동을 함으로써 군살을 빼고 건강한 몸을 만드는 방식이 바로 GE에서 채택된 '워크아웃' 이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미국의 금융계에서 쓰이는 이른바 관용구 내지 속어로서 '워크아웃' 은 전혀 뉘앙스를 달리하는 것일 뿐더러 의미하는 바도 다르다.

그것은 부실채권 (不實債權) 의 회수 또는 부실채권의 회수대책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워크아웃' 이란 말은 비록 같은 말일지라도 세 갈래의 뜻으로 쓰임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운동의 뜻이고, 둘은 기업 스스로의 구조조정 등 문제를 푼다는 뜻, 셋은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회수대책을 뜻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한데 '워크아웃' 의 뜻을 풀이한 우리나라의 신문들을 살피면 알 듯 모를 듯 종잡을 수가 없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어떤 신문은 그것을 '기업가치회생' 이랬다가 '기업구조개선' 이라고 풀이했는가 하면 다른 신문은 '기업개선작업' 이라고 했다.

엄격하게 말해 이런 풀이는 그 어느 것이나 정확한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워크아웃' 은 결과적으로 기업가치가 회생되고 기업구조가 개선되는 것일지언정 본래의 뜻은 '부실채권정리작업' 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워크아웃' 은 기업이 주체가 돼서 하는 것이 아니고 금융기관이 채권자로서의 권한을 행사해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참뜻보다는 어정쩡한 풀이가 신문에 한결같이 등장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물론 그렇게 된 데는 몇가지 원인이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워크아웃' 이란 말이 애당초 관급기사 (官給記事)에서 시작됐고 그 테두리에서 맴돌았다는 점이다.

이 점과 관련해 내가 아쉽게 여기는 것은 어느 한 신문이라도 미국 금융계의 '워크아웃' 실태를 제대로 취재해 보도한 신문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현실이 급박한데 미국까지 취재할 겨를이 없다고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워크아웃' 의 본질과 운영제도를 제대로 알려야 하는 것이 언론의 책무일진대 그것은 면책사유가 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둘째로 지적될 수 있는 원인은 '워크아웃' 이 미국에선 금융기관 자율로 이루어지는 데 반해 우리나라에선 관 (官)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한국적 현실이라고 한다면 그 풀이가 모호해지거나 정책의 긍정성을 부각시키는 풀이로 치우쳤다고 해서 마냥 잘못됐다고 할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더라도 가닥만은 제대로 잡고 알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셋째, '워크아웃' 은 법률과 회계, 기업분석과 트레이딩 등 복잡다단하기 때문에 미국 금융계에서도 전문인력이 많지 않은 데 비해 우리나라는 이제 '시작' 이기 때문에 전문가를 더더욱 손꼽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신문의 처지에서 보면 취재의 깊이와 폭을 넓혀야 할 당위성 (當爲性) 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이규행(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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