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믿을 수 없는 외교통상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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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아브람킨 러시아 참사관이 서울에 오는 일은 없다. 그 문제는 논의되지도 않았다. " (7월 28일 曺一煥구주국장)

"아브람킨 재입국을 합의했다는 프리마코프 장관에 대해 박정수 (朴定洙) 장관이 항의할 것이다. " (7월 28일 李浩鎭대변인)

"이면합의는 없었다. 아브람킨 참사관이 서울에 오는 일이 없다는 구주국장 발언이 내 입장이다. " (7월 29일 박정수장관)

이상은 마닐라에서 열린 한.러 외무장관회담 뒤 외교통상부 핵심들이 정식으로 밝힌 내용. 특히 장관의 발언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강조된 부분이다.

그런데 외통부는 여운 (餘韻) 이 가시기도 전 이 말이 거짓이었음을 자인했다.

러시아 상주 정보요원 숫자를 다소 늘려받는 대신 아브람킨의 일시 체류를 검토하겠다고 했다고 시인한 것이다.

정부측의 유일한 사과는 "미안하게 됐다" 는 담당국장의 단 한마디였다.

며칠도 안가 들통날 사실을 뻔뻔스레 둘러친 이런 정부를 믿어야 하는가라는 회의마저 들게 하는 것이다.

'부도덕' 이란 말로는 국민이 느끼는 황당함과 배신감을 표현키 어려운 상태다.

낯 붉어진 당국은 아브람킨의 '기피인물' 설정엔 변함이 없고 가사정리라는 '인도적 차원' 의 일시체류라는 점만 되뇌고 있다.

실제협의는 추후 정보기관끼리 한다는 '눈가리고 아웅' 식 설명도 이어진다.

그러나 곁에서 해줘도 충분할 '짐정리' 가 인도적 차원의 재입국 사유가 될 수 있다고 과연 누가 믿을 것인가.

아브람킨의 '서울행 비자' 를 결정하는 주체가 외통부라는 점에서 결론을 정보기관에 미뤘다는 주장도 거짓을 가리기 위한 또다른 거짓의 반복에 불과한 듯 싶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국민앞에 진솔하게 사과해야 한다.

"한번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모든 게 헝클어졌다.

대북정보의 중요성과 한.러관계를 고려, 아브람킨 재입국을 양보했다.

이번 실수를 뼈저린 교훈으로 삼겠다" 고.

상처받은 모두의 자존심에 소금만 뿌려대는 '기만' 과 '미봉' 의 시리즈는 당장 중단돼야 한다.

최훈(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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