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참사관 '아브람킨'소동 드러난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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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의 아브람킨 러시아 참사관 재입국 수용에 따른 '굴욕외교' 는 정부의 도덕성 및 신뢰에 대한 기본적 의문을 낳는 등 그 후유증이 심각하다.

조성우 (趙成禹) 참사관 전격추방, 추가추방, 회담결렬의 뒤통수만 얻어맞은 우리측은 아무런 명분.실리도 없이 손든 격이 돼 당초 아브람킨 맞추방의 강경대응 선택과 사실은폐의 인책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게 됐다.

◇ 아브람킨 재입국 수용 진상 = 1차 마닐라 외무장관회담 (7월26일) 이 결렬된 뒤 27일 막후협상에서 러시아는 동수 (同數) 로 맞춘 한국 정보요원의 수를 더 늘려줄테니 '가사 (家事) 등 신변정리' 를 위한 아브람킨의 일시체류를 허용해달라는 새 카드를 꺼냈다.

우리측도 아브람킨의 '기피인물' 지위는 유지하되 인도적 차원의 일시체류를 검토하겠다는 선에서 2차회담 재개가 합의됐다.

프리마코프 장관은 2차회담 (28일)에서 예정대로 일시체류 재입국을 요구해왔고 박정수 (朴定洙) 장관은 "기피인물 지정에 변함이 없다는 전제아래 검토하겠다" 는 입장을 전달했다.

러시아측은 이를 '합의' 로 받아들였고, 우리측은 "검토입장만 전하고 정보기관간 협의로 미뤘을 뿐 '이면합의' 는 아니다" 고 주장하는 배경이 된 것.

◇ 왜 양보했나 = 결국 조성우.아브람킨 참사관의 맞추방 설전의 명분에서 밀린 때문. 러시아측은 趙참사관이 5백~1천달러를 건넸을 뿐 아니라 모이셰프 부국장의 연행 당시 서랍에서 1만5천달러가 나왔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 정부, 왜 숨겼나 = 한.러 2차회담 당시 "러시아측이 아브람킨 논의는 비공개로 하자고 제안해왔다" (宣晙英 외통부차관) 는 게 우리측 주장. 말하자면 프리마코프 장관이 언론 유출로 이를 깬 셈이고 우리측은 약속을 지키느라 이틀동안 사실을 숨겼다는 얘기다.

이대로라면 러시아측에 마땅히 항의를 해야 하나 정부는 단 한마디의 말도 꺼내지 않고 있다.

비공개합의의 여부조차 석연치 않은데다 결국 여론의 화살이 두려워 은폐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 외교통상부 - 관계당국간 불협화음 = 정보당국측은 사태가 불거지자 "당초 아브람킨의 재입국문제는 종결됐던 상황인데 외통부가 잘못 처리해 그르쳤다" 고 책임을 미루고 있는 상황. 반면 외통부측은 "이미 정보기관간에 종료된 사안인 줄 알고 1차회담에 나갔다 낭패를 봤다" 고 불만을 토로, 협의부재를 반증하고 있다.

◇ 처리 전망 = 추후협의를 떠맡은 우리 정보당국은 31일 "아브람킨 참사관은 절대 서울에 올 수 없다" 는 입장을 밝혀 향후 러시아 해외정보부 (SVR) 와의 협상이 또다른 '뇌관' 으로 남게 될 전망이다.

정부내에서는 러시아측이 실제 아브람킨을 서울로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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