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기자가 쓴 실직현장 보고서 '당신은 나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작은 회사를 경영하는 김성기씨의 아내가 유방암을 선고받은 것은 6개월전. 어려운 회사사정 탓에 생산.경리.식사.밤참 등 1인5역을 해내던 아내가 검사 한번 받지 못하고 얻은 몹쓸 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담담했다.

"여보, 예전에 암보험 든 게 있어요. 보험금이 4천2백만원이니까 수술비를 빼고 3천만원은 남을 거에요. 회사에 급한 불이나 꺼요. 아마 거기 쓰라고 하늘에서 암을 선물했나 봐요. " 실제 김씨는 그 돈으로 휘청거리던 회사를 살렸고 아내는 아직도 투병 중이다.

불황을 맞아 새롭게 생겨난 암울한 자화상 중의 하나다. 정든 직장을 떠나 방황하는 가장, 결혼마저 늦춰야 하는 연인, 학교 문을 나서고도 교정을 서성대는 젊은이. 이들의 얘기를 현장취재를 통해 모은 '당신은 나의 작은 영웅입니다' 가 같은 실직의 아픔을 당한 전직기자 출신 최정훈씨에 의해 출간됐다 (명진출판刊) 50여편의 'IMF 사연' 들 중에는 안쓰러운 얘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취업 초년생 김성균씨는 떨어지기만 하는 취업시험 때문에 매번 이력서 쓰기가 귀찮아 복사집을 찾았다. 그때 우연히 찾아간 복사집 아가씨가 그의 마음을 쏙 빼앗아 간 것. 그 후부터 지원하는 회사의 모든 지원서를 그곳에서 복사했고 마침 한부를 보관하고 있는 그녀가 '의욕 가득한' 그 지원서를 보고는 서로 마음이 통해 버린 것. 취업불황 탓에 생겨난 커플이다.

저자는 최근 6개월동안 사회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주워담았다. 구조조정으로 물러난 후 그 회사 앞에 분식점을 차린 홍국장의 사연이나 부도를 내고 구속된 남편이 보낸 결혼기념일 꽃바구니를 보고 기뻐하는 아내의 얘기 등을 쭉 써내려간 저자는 어려운 삶 속에서도 모든 이들이 '처음부터 다시' 란 희망을 안고 있었다고 전한다.

실제 그는 취재과정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 '인생과 삶에 대한 외경심' 을 갖게 된 것이라고 자랑한다. 최근 IMF를 소재로 소소한 감동을 주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서적들이 심심찮게 출간됐다.

하지만 대부분 감상적 수준에 그쳤던 게 사실. 반면 이 책은 근처에서 볼 수 있는 눈물겨운 사연들을 실감 있게 정리하며 남의 문제를 곧 나의 문제로 끌어들인 시도가 돋보인다.

신용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