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안도현씨 산문집 '사진첩'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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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 세상 때문에 상처받은 일이 생겼을 때, 외롭고 쓸쓸해질 때, 우울하고 막막해서 마음의 손마저 차가워질 때, 나는 사진첩을 펼치리라. 사진첩을 들여다보다 보면, 친구를 만나로 기차 타고 가는 것처럼, 나, 따뜻해지리라" 며 시인 안도현씨가 우리를 낡은 사진 앨범에 태워 추억여행에 초대하고 있다.

안씨가 자신의 가족사진 앨범을 보여주며 사진마다의 추억과, 사람과 사물의 관계를 정겹게 해설한 '사진첩' 을 펴낸 것 (거리문학제刊) . 부모의 결혼 사진에서부터 60년대 초반 시인의 첫돌과 개구장이.초등학교 입학.소풍.중고등학교 시절까지 10여점의 빛 바랜 사진을 보여주며 안씨 특유의 숭숭 뚫린 산문으로 시간의 이쪽 저쪽을 뛰어넘으며 지난 삶의 소중한 의미를 일깨우고 있다.

41년전 외가 마당에서 찍은 부모의 사진을 보며 안씨는 이렇게 몽상한다.

이 사진 속에 나는 없다.

그때 나는 한 줌의 바람이었거나 햇빛, 한 점의 미세한 먼지, 그도 저도 아니면 그저 한 조각의 푸른 하늘빛이었을 것이다.

내 어깨 너머로 바라보며 '또 할머니 결혼 사진이구나' 하는 일곱살박이 아들. 태어나기 전 세상을 떠난 사진 속 스물네살의 할아버지와 사진 밖의 어린 아들 사이에 내가 있음을 느낀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현재진행형의 내가 앉아 있다. 나는 그 둘을 연결하는 노끈일까. 사진 속에 서 있는 신랑과 신부를 다시 살펴본다.

아 저 둘 사이의 간격. 몸과 몸, 마음과 마음이 닿을 듯 말 듯한 저 원초적 순결성의 간격을… 이라고. 옛 사진을 통해 안씨는 과거도 현재도 아닌 영원한 현재진행형으로서 삶의 원형을 우리에게 돌려주고 있다.

현대인이 잃어버린 원초적 순결성의 간격,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이의 예의와 그리움이 우러날 수 있는 간격의 미학을 앨범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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