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깊이읽기] “내가 노벨상 받은 건 남과 어울렸기 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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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루한 사람과어울리지 마라
제임스 듀이 왓슨 지음, 김명남 옮김, 이레 486쪽, 2만5000원

제임스 왓슨은 유전의 비밀을 풀어줄 DNA의 이중나선 구조 발견으로 과학사에 이름을 남겼다. 프랜시스 크릭, 모리스 윌킨스와 함께 196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고, 전 세계를 누비며 강연을 했다. 하버드 대학 교수로서 평생 연구를 하며 살았다.

그런 인물에게도 ‘내가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이라며 아쉬워하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그가 우리에게 그런 내용을 털어놓으면서 인생의 멘토링을 자처했다.

이 책은 그의 자서전이다. 특이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 인생을 15개 장으로 나누고, 각 장의 말미에 그 시기의 아쉬움과 충고를 정리해놓았다는 점이다. 그러니 자기계발서를 겸한 자서전이라 할 만하다.

어린 시절 그는 용기 있게 새로운 형식에 도전한 영화 감독 겸 배우 오손 웰스에게 감명받았다. (웰스는 그의 가까운 사촌이다) 그가 DNA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 것은 이러한 역할 모델이 있었기에 가능했는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닮고 싶은 젊은 영웅을 찾아 보아라’는 충고에 무게를 담았다.

학창 시절과 관련한 조언들은 오늘날에도 유효해 보인다. ‘왜를 아는 것이 무엇을 외우는 것보다 중요하다’ ‘대학은 생각하는 것을 배우는 곳이다’ ‘새로운 발상을 하려면 새로운 사실이 필요하다’ 등등. ‘선생님처럼 생각하라’ ‘높은 학점을 받을 수 있는 과목을 들어라’ ‘인기 있는 친구가 아니라 똑똑한 친구를 사귀어라’ 등 노골적인 처세 충고에도 눈길이 간다.

1962년 12월 노벨상 시상식. 왼쪽부터 모리스 윌킨스, 막스 페루츠, 프랜시스 크릭, 존 스타인백, 제임스 듀이 왓슨, 존 켄드루. [이레 제공]

책의 제목이 된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Avoid boring people)’에는 체험이 묻어난다. 신분이 보장되는 종신교수 자리에 올라 더 이상 창의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진 사람들과 저녁을 먹는 것은 얼마나 따분할까. 차라리 그 시간에 뉴욕 타임스를 읽는 게 참신한 발상을 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식사가 끝내주거나, 넋 놓고 바라볼 미인이 참석하지 않는 이상’이란 단서가 붙어있어 그의 위트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외곬로 살라는 건 아니다. 그는 ‘왜 남들은 이중나선을 발견하지 못했을까’라고 자신에게 묻고 “그들은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자답한다. 주변 사람과 조화를 이루면서 남과 도움을 주고받고 의지도 하면서 어울려 살아야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게 그의 충고다.

과학 관련 충고는 더욱 노골적이다. 그는 ‘과학은 극도로 사교적인 행위’라고 강조한다. 과학자들에게는 ‘방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되지 마라’‘주변 사람이 예리할수록 당신도 예리해진다’‘시대에 앞선 목표를 잡되 몇 년 내로 구체적인 성공이 예감되는 주제만 다뤄야 한다’는 충고를 던진다. 비즈니스에서도 먹힐 만한 격언들이다.

그는 과학자들에게 주변 사람이 다 아는 과학논문만 보지 말고, 다양한 신문·잡지를 읽으며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히라고 강조한다. ‘운동은 지적 우울을 쫓아내는 특효약’이라며 지나치게 일에만 매달리지 말라고도 조언한다.

지은이는 이 책에 대해 “과학자의 성장사로서는 그다지 모범적인 사례가 아닐지 모르지만 내가 험난한 과학계와 학계를 헤쳐나가기 위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보는 것은 좋은 교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때로 거칠고, 때로 지나치게 현실적으로도 보이는 그의 충고에 자꾸 눈이 가는 것은 그의 말이 하나같이 소탈하고 진솔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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