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서리체제 위헌소송 각하]헌재 결정과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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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새 정부 출범 이후 최대 정치쟁점이었던 총리서리체제 위헌여부를 둘러싼 여야의 대립이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이번 결정의 근거는 외형상으로는 헌재 재판관 9명중 5명이 다수의견으로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청구권이 없다" 는 각하의견을 냈기 때문.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재판관들 사이에 국회의 임명동의안이 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총리서리를 임명한 것에 대해 상반된 의견이 나왔다.

다수의견은 총리 임명동의는 국회의원 개인의 권한이 아닌 국회의 권한이므로 권한이 침해된 국회가 권한쟁의를 제기해야 한다는 절차.형식론을 내세운 것이다.

또 헌법재판소장을 맡고 있는 김용준 (金容俊) 재판관은 "다수당의 반대로 국회 의결절차를 통과하기 힘든 소수당 의원에게는 소송당사자로서의 자격이 인정되지만 원내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경우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는 이론으로 한나라당 의원들의 청구자격을 원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문희 (金汶熙) 재판관 등 3명은 "국무총리를 임명한 것은 헌법의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되고 국회의원들의 임명동의안 표결권을 침해한 것" 이라며 총리임명이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냈다.

이들은 또 "헌법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하고 한번의 헌법위반이라도 이를 눈감으면 헌법은 장식적 규범으로 돌아간다" 는 강경한 표현으로 권한쟁의 청구를 받아들일 것을 주장했었다.

결국 헌재의 이번 결정은 총리서리체제의 위헌 여부를 가린 게 아니고 절차상의 하자를 내세워 각하결정을 내린 점에서 헌법수호의 최고 기관인 헌법재판소가 본연의 임무를 회피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소지를 남겼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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