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고고학자 조유전의 한국사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고학자 조유전의 한국사 미스터리
조유전·이기환 지음
황금부엉이, 452쪽, 1만4500원

2002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을 끝으로 퇴임한 조유전(62·문화재 위원)씨는 지금 불볕 더위에도 발굴 현장을 지키고 있다. “충청도 청주 언저리서 헉헉 거리고 있어요. 덥기는 정말 덥네. 땅속 유물이 어디 여름이라고 봐줍니까. 후배들 휴가라도 보내야 내가 숨을 좀 돌릴텐데.” 1960년대 초부터 40여 년 오로지‘현장 고고학자’로 살아온 그다운 말이다.

공직을 뒤로 한 그가 자유로운 처지에서 쓴 이 책은 발굴로 풀어본 살아있는 우리 역사 이야기다. 경주 안압지부터 공주 무령왕릉까지 한국 발굴사가 손꼽는 현장 서른 곳에서 그가 파올린 한민족 얘기는 땀과 눈물에 젖어 있다. 지난 1년 경향신문에 연재한 내용을 원고 청탁자인 이기환씨와 정리한 조씨는 “보람찬 백수 생활을 보냈어요. 정년을 맞이하고 나서야 조금의 틈과 배짱이 생긴 것 같네요”라며 웃었다.

고대사의 블랙박스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1971년 공주 무령왕릉 발굴을 돌아보며 그는 취재 경쟁으로 단행된 졸속 발굴을 까발린다.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를 놓고 한국과 일본이 티격태격하는 경남 고성 송학동 제1호분에 대해서도 묻힌 이가 일본과 연관 있는 사람, 왜인(倭人)일 것이라고 자른다. 배짱이란 단어를 쓸 만하다.

경주 안압지에서 나온 목제 남근(男根)을 보며 “왕녀 누군가가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너무 외로워 밤이 무서워진 궁녀 누군가가 사용한 것인지 확인할 길은 없어 이 문제는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 것 같다”고 슬쩍 눙치는 그를 보는 것도 책 읽는 재미다. 철저한 고증과 분석을 중시하는 고고학자에게 느긋한 틈이 생긴 것이다.

정재숙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