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당·정 갈등에 산으로 가는 사교육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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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행부서인 교과부가 중심을 잡고 사교육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지난달 30일 오전 안병만 장관 등 교과부 관계자들에게서 ‘사교육비 대책안’을 보고받은 이명박 대통령이 했다는 말이다.

이 발언을 놓고 해석은 가지각색이었다. 이 대통령의 말을 전한 교과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교과부에 상당한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했다. 교과부와 충돌했던 미래기획위나 한나라당 의원들보다 교과부의 의견을 밀고 나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교과부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균형 잡힌 정책을 만들고, 보다 개혁적으로 하라는 주문이지 다른 의견을 배제하라는 뜻은 아니다”고 말했다. 미래기획위에선 “교육부를 질책한 것”이란 주장이 나왔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를 놓고 벌어진 이 해프닝은 사교육 절감 대책을 놓고 두 달이 넘게 벌어진 여권 내부의 혼란상을 대변한다.

“밤 10시 이후엔 학원 교습을 못하게 하겠다”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발언이 나온 지 3일로 꼭 70일째다. 당·정·청의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사교육 대책회의를 시작한 게 지난달 30일이 처음이었으니, 그 기간 동안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느꼈을 혼란은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사교육비를 줄인다고 하면 내 딸도 잘 안 믿는다”는 대통령의 호통 때문에 엉겁결에 시작한 그 대책회의마저 출발부터 휘청대고 있는 것이다. 교육정책을 맡고 있는 최구식 한나라당 제6정조위원장은 첫 대책회의 바로 다음 날 이주호 교과부 차관에게 항의를 했다.

“협의도 거치지 않은 교과부안을 왜 확정된 것처럼 브리핑하느냐”는 요지였다. 학원 심야교습 단속 법제화 무산과 수능 과목 축소가 마치 확정된 것처럼 교과부 입맛대로 발표했다는 항의였다.

그러자 교과부도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안병만 장관은 2일 보도된 언론 인터뷰에서 “교과부에서 검토해 발표하는 것만이 정책”이라며 “교육 정책을 관장하고 최종 결정을 하는 사람은 교과부 장관”이라고 못 박았다. 한나라당, 미래기획위와 함께 “잘해 보자”며 이제 막 협의를 시작한 교과부의 수장으로선 썩 어울리지 않은 언급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사교육비 절감 대책은 ‘곽승준 위원장+정두언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과 교과부 사이에 끼어 지난 70일간 단 한 발짝도 못 나갔다. 상호 비방으로 인한 포연만 가득했다. 정 의원과 곽 위원장 측에선 “안 장관이 학원 심야교습 단속 등 미래기획위의 안에 찬성했다가 관료들만 만나고 오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공격했다. 안 장관의 교과부는 두 사람이 주도하는 사교육 대책안을 대부분 평가절하해 왔다. 대통령직 인수위 교육분과 간사-초대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을 지낸 뒤 교과부에 화려하게 입성한 이주호 차관은 조율보다는 침묵만을 지키는 모양새다. 여기에 청와대 정진곤 교과수석팀의 조율 기능조차 단 한 차례도 작동하지 않고 있는 총체적 난국이다.

뒤늦게 심각성을 절감한 이 대통령의 호통까지도 이들의 갈등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일까.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던 야심 찬 대선 공약과는 계속 반대로만 가는 느낌이다.

서승욱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