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면 한-러 외교갈등]'막후대결'로 방향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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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양국 외무부 고위관계자의 '화해 메시지' 는 조성우 (趙成禹) 참사관 추방을 둘러싼 한.러간의 갈등에 가닥이 잡힐 것이라는 기대를 확실히 주고 있다.

이처럼 고위 외무부 관계자가 동시에 "더 이상의 갈등을 바라지 않는다" 고 한 것은 사태 이후 처음이기 때문에 그런 기대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특히 외교통상부 박정수 (朴定洙) 장관이 "추가조치가 없기를 바라며, 또 없을 것으로 안다" 고 한 발언은 두 나라가 막후접촉을 통해 해결로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제기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고위층의 '동시 발언' 에 아직 큰 의미를 부여할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러시아측의 발언은 사태이후 계속돼 온 '한쪽으로는 때리고, 한쪽으로는 화해신호를 보내는' 양면 전략일 뿐이라는 것이다.

朴장관의 발언도 우리의 희망을 강하게 표시했다는 의미가 더 크다는 것이다.

사태의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양국 '정보기관' 의 의견이 양측 외무부의 의견과 일치하는지도 아직 분명치 않다.

또 최근에 잇따라 제기되는 사태의 다양한 원인들도 쉽게 상황이 진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의 배경이 되고 있다.

카네기연구센터 모스크바 분소의 드미트리 트레닌 박사는 "러시아 정보기관은 한국이 너무나 뻔뻔스럽게 (too brazenly) 행동하는데 격분했을 수 있다" 고 9일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10일 "사건의 진짜 배경은 趙참사관이 아니라 한국 정보기관이 러시아의 체면을 손상시킬 '민감한 사안' 에 접근한 탓" 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지는 이를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둘째딸인 타티야나 디야첸코까지 한국 안기부의 공작 대상으로 삼아 크렘린을 자극했기 때문" 이라고 보도했다.

그외에도 ^한.러 관계가 미국.일본 등과 비교해 매우 낮은 수준이고^4자회담 등 국제 사안에서 한국이 러시아를 홀대하는데 대한 반발^한국과의 경제협력이 기대 이하인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점들은 상황이 쉽게 진정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따라서 양국 수뇌부의 '화해' 발언에도 불구하고 당장 조기 수습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직 성급한 일인 것 같다.

모스크바 = 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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