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용승계여부 인수은행 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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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그동안 정부와 5개 퇴출은행을 자산.부채 인수 (P&A) 방식으로 인수하기로 한 5개 은행간에 고용승계를 둘러싼 줄다리기는 일단 고용승계의무가 없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당초 금융감독위원회는 5개 부실은행의 퇴출을 발표하면서 대리급이하 직원 등 80%는 재고용될 것이라고 밝히고 인수은행에 협조형식을 빌려 재고용을 요청했다.

따라서 인수은행과 고용승계의무가 없다고 합의한 것은 이같은 발표를 번복한 셈이 된다.

우리는 금감위가 고용승계를 인수은행에 요청했을 당시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따라서 금감위가 당초 방침을 바꾼 것은 타당하다고 본다.

퇴출은행의 처리방법을 법적으로 고용승계의무가 없는 P&A방식을 택한 이상 퇴출은행의 직원을 재고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전적으로 인수은행이 결정할 사항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인수은행이 고용승계를 해줬으면 하고 바라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가뜩이나 곳곳에 실업자가 늘어나는 마당에 이 문제 때문에 은행개혁이 흔들리면 안된다고 걱정했을 법하다.

그러나 망한 은행이 있으면 잘되는 은행이 나타나야 언젠가 다시 고용을 늘릴 수 있는 것이고 그러자면 인수은행의 부실화는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이것은 시장경제운영의 원칙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퇴출은행의 고용승계문제에 관한 한 정부나 경영자단체나 모두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필요가 없다.

인수은행이 당분간 퇴출은행이 보유했던 지점운영을 위해 재고용을 하든지, 합리화를 위해 지점을 없애겠다고 결정하든지 그것은 인수은행의 권한이자 책임이다.

일본의 야마이치 (山一) 증권사가 파산한 후 2천여명의 종업원이 미국 메릴린치사에 의해 재고용된 것은 사장이하 임직원이 끝까지 직업윤리와 고객에 대한 신뢰를 지키고 서비스정신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정부나 경제단체가 요구해서 된 일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해직은행원 문제를 2기 노사정위원회에서 대화로 풀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노사정위원회에서 토의는 할 수 있지만 원칙을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직장을 잃는 사태는 안타깝지만 더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지 않게 하려면 왜 은행개혁을 했는지, 인수은행이나 조건부승인을 받은 대형 시중은행은 인력조정이 필요없는지를 살펴야 한다.

살아남은 은행도 상당한 점포를 폐쇄해야 한다.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사태를 호도하지 말고 확고한 선을 긋고 협조를 구하는 것이 용기있는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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