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시장경제.지시경제.눈치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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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에 "과연 한국이 시장경제인가" 를 묻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IMF 위기극복을 위해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지금처럼 모든 것을 정부가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것은 어쩐지 불안하다는 것이다.

경제 돌아가는 모습이 어떤 때는 시장경제 같다가도, 어떤 때는 (정부에 의한) 지시경제 같기 때문이다.

이같은 경제의 오락가락이 DJ의 경제관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제대로' 병행하면 정부 간섭도, 특혜도 없는 자율시장경제가 자리잡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경제는 '눈치경제' 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정부 눈치를 보지 말라고 해도, 기업은 "장사를 계속해야 하나, 손을 털어야 하나" , 은행은 "부실기업에 대출을 계속해줘야 하나, 포기해야 하나" 여전히 정부 눈치를 살핀다.

아무리 적법한 해고가 가능하다고 일러도, 기업과 은행들은 "근로자를 내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부 심중 읽기에 바쁘다.

아니 예전보다 더 심해졌다.

정부가 기업과 은행들한테 개별사업의 투자와 포기, 개별기업의 대출과 부실판정뿐 아니라 심지어 고용과 해고 등 일반경영에 이르기까지 '조언' 과 '요청' 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지난 40년 눈칫밥 먹어온 민간을 더욱 움츠리게 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구조조정 지연과 무책임 경영을 감안하면 민간의 눈치경제가 자업자득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아무리 구조조정과 경제개혁이라는 정책 '목표' 에 모든 이가 공감한다고 해도 '모든 정당한 목표가 모든 수단을 정당화' 하는 것은 아니다.

한시 바삐 정부가 언제까지, 또 어디까지 민간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행사할지 스스로 밝혀야 할 것이다.

정부개입의 한계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날이 갈수록 눈치경제는 심해지고 자율경제와 대외신뢰 회복은 멀어질 것 같아서다.

김정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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