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인수은행 선정 내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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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퇴출은행 선정에는 여러 곡절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막바지에 이르면서 일부 은행들은 생사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긴박한 상황에 부닥치기도 했다.

우선 퇴출은행의 수에 대해 혼란이 있었다.

금융감독위원회가 인수은행의 전산실무자들을 마지막으로 불러 최종점검을 하던 지난 26일 밤만 해도 신한.국민.주택.한미은행 등 4곳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대동.동남.경기은행과 충청 또는 충북은행을 염두에 두고 준비했다고 한다.

그러나 27일 오전부터 한개가 더 늘어나는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었다.

이날 오전 최종의견을 금감위에 제출하려던 은행경영평가위원회는 하루 더 회의를 했다.

28일 최종적으로 윤곽을 드러낸 명단에는 동화은행이 포함됐다.

실향민들의 출자은행이라는 점이 최근의 남북관계와 맞물려 보탬이 될 것이라는 관측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또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형택 (李亨澤) 씨가 이사대우로 재직중이라는 점도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정부가 기업구조조정과는 달리 금융구조조정만큼은 확실히 한다는 원칙을 세우기 위해 '눈 딱 감고' 원칙대로 퇴출시킨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 금융계의 추측이다.

퇴출 숫자가 5개로 늘면서 인수은행을 한곳 더 끼워넣느라 금감위는 마지막 절충을 했다.

막판에 합류한 인수주체는 하나은행. 이헌재위원장은 "주주인 국제금융공사 (IFC) 의 동의를 얻느라 협의과정에서 시간이 걸렸다" 고 실토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 외국은행이 예상찮은 요청을 해왔다.

자신이 출자한 은행이 인수주체로 선정되자 아예 특정은행을 찍어 "이것을 갖게 해달라" 는 식의 의사를 전달했다는 것. 이에 따라 짝짓기가 막판에 다소 흐트러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충청권에서는 국제결제은행 (BIS) 자기자본비율이 더 높은 충청은행이 퇴출돼 관심을 모았다.

대주주이자 자민련 소속 이인구 (李麟求) 의원이 경평위에 출석해 구명요청을 한 것이 오히려 감점요인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이밖에 경평위가 퇴출시키자고 한 평화은행에 대해서는 금감위가 '근로자은행' 이라는 점을 감안해 BIS비율 규제를 완화해 살 길을 터줬다.

한편 경평위는 오는 2000년 6월말 BIS비율을 8%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느냐를 따졌을 뿐 외압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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