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도 바뀐다]상.뒤바뀌는 순위…갈길 먼 빅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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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금융감독위원회가 12개 은행에 내린 조치는 '부실은행 퇴출' 과 '우량은행 대형화' 를 두 축으로 삼고 있다.

단순히 부실을 청소한다는 방어적 구조조정을 뛰어넘어 경쟁력있는 대형 우량은행 (리딩뱅크) 의 육성을 근본목표로 삼은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신한.국민.주택.한미.하나은행에는 퇴출 은행의 우량자산을 넘겨줘 리딩뱅크로 발돋움할 기회를 줬다.

국민은행은 지난해말 자산이 54조4천억원인데 대동은행을 인수하면 62조1천억원대로 불어나 외환은행 (62조3천억원)에 이어 2위로 부상하게 된다.

주택은행도 47조원의 자산에 동남은행을 인수하면 57조원 정도로 3위가 되며 신한은행도 동화은행을 떠안으면 자산이 56조5천억원으로 4위에 성큼 올라선다.

또 인수 은행은 퇴출 은행의 우량자산만 넘겨받고 앞으로 6개월간 발생하는 잠재부실도 정부로부터 보전받는다.

부실은행 한곳씩 떠맡아주는 대가로 제2단계 금융구조조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에 비해 조흥 (55조6천억원).한일 (53조9천억원).상업 (48조6천억원) 은 5위권 이하로 밀려나게 된다.

게다가 이들은 구조조정에 끌려다니는 신세가 돼 입지가 과거에 비해 상당히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 은행이 리딩뱅크의 자리를 노리려면 합병이나 증자를 통해 더욱 대형화해야 한다. 그것도 부실을 줄여가며 튼튼한 몸집을 만들어야 한다.

금감위는 이런 고통스러운 작업을 강요하고 나섰다.

수시로 자구이행 상황을 점검해 제대로 안되면 제재를 가하기로 했다.

합병도 말만 '자발적' 일 뿐 강압적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헌재 (李憲宰) 금감위원장은 "조흥.상업.한일.외환은행이 건실한 선도은행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량은행과의 합병이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합병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결국 대형은행간의 합병은 기정사실로 굳어진 셈이다.

이에 따라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 금융시장은 몇개의 확실한 대형 선도은행이 이끌고 그 밑의 틈새시장에서 소매금융전문의 소형은행들이 공존하는 구조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이것이 현실화하는 것이 곧 '금융빅뱅' 이다.

금감위는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경제회생의 기틀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금융시스템을 정상화시키지 않고는 기업활동을 북돋울 수 없기 때문에 금융기관 종사자들의 대량실업을 감수하고라도 반드시 끝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금감위는 또 금융구조조정을 이번으로 끝내지 않고 계속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현재 우량은행과 부실은행과의 차이가 종이 한장 수준이므로 계속적인 구조조정의 고삐를 조여야 차별화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금감위는 또 인수주체은행이 된 곳이나 국제결제은행 (BIS) 자기자본비율이 높은 은행도 경영이 부실해지면 즉시 추가정리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자동격발장치' 를 제도화하겠다는 뜻이다.

현재 정해진 일정대로라면 오는 2000년말까지는 부실은행 퇴출이 수시로 이뤄지게 된다.

한편 구조조정은 일반고객들에게도 미치는 영향이 크다.

예금주들은 그동안 어느 은행이 망할지 몰라 불안해했으나 앞으로는 대형우량은행이 확실하게 커져 안심하고 돈을 맡길 수 있게 된다.

부실은행이 퇴출돼 우량은행만 남으면 금융시장에서 돈이 잘 돌아 대출받기도 한결 수월해진다. 다만 퇴출대상 은행의 고객들은 잠시 불편하겠지만 인수절차가 끝나면 오히려 안심해도 된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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