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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식 서민행보 … 이벤트에 그쳐선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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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서울 이문동 골목에 있는 구멍가게, 과일 노점상 등을 방문했다. 구멍가게 할머니와 가게 앞 의자에 앉아 하소연을 듣고 과일도 사줬다. 영세상인들과 비빔밥으로 점심도 먹었다. 경제위기로 가장 타격을 받는 서민의 어려움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겠다는 생각은 바람직하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다.

서민행보는 최근 강조하는 ‘중도강화론’의 일환이라고 한다. 경제회복에 힘쓰다 보면 경제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서민층·소상공인 등이 오히려 피해를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계층을 끌어안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겠다는 기본 방향은 맞다. 낡은 이념의 틀에 매이지 않고 실용주의로 가겠다는 데도 공감한다.

다만 중도·실용 정치가 이벤트에 그쳐선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서민을 보호하는 정책은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구멍가게 할머니를 만나는 정도를 ‘중도’라는 포장으로 새로운 것인 양 홍보하는 것이라면 이미지 정치에 불과하다. 그런 이벤트야 선거 때부터 여러 차례 보아온 것이다.

중도를 지향한다면 포장이 아니라 내용, 즉 정책으로 드러내야 한다. 다행히 어제 이 대통령이 주재한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논의된 내용도 그렇고, 한나라당에서도 서민정책 마련에 힘을 모은다고 한다. 다음 주에는 구체적인 서민생활 안정대책까지 내놓을 것이라고 하니 실질적이고 내실 있는 방향으로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중도강화론’이 또 다른 이념논쟁의 불씨가 돼서도 안 된다.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좌파니 우파니 하는 것은 그야말로 냉전적 사고의 산물이다. 그 수구적인 극좌와 극우의 대립 때문에 치르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미래로 도약하는 것을 방해해 왔다. 중도 표방은 그걸 털어내자는 취지일 텐데 자칫 잘못 다루면 좌우분쟁을 불식시키기는커녕 새로운 좌-중-우 논쟁으로 시비를 키우는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소지가 있다. 이미 좌우 양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서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가장 경계할 대목이다. 중도정치가 자리 잡기 위해선 내실 있는 정책 제시와 함께 정교한 추진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 “논쟁보다 결과물을 채워주겠다”(이동관 대변인)는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