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외자유치”말이 앞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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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샴페인을 또다시 빨리 터뜨리고 있는 것 아닌가' . 최근 잇따르고 있는 외자 (外資) 유치 발표와 관련, 업계에서 제기하고 있는 우려다.

외자유치 협상이 성사된다는 보장이 없는데도 달러화 유입이 확정된 듯 유치 사실을 발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발표 시기가 국제관례상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 '다른 저의가 있는 게 아니냐' 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발표시기가 너무 빠르다 = 미국 메트로라이프보험으로부터 10억달러 외자 유치를 발표한 대한생명은 양해각서 (MOU)에 서명한 단계다.

재미 벤처사업가 김종훈 (金鍾勳) 씨로부터 2억달러 유치를 발표한 조흥은행은 의향서 (letter of intent) 를 받은 것에 불과하다.

MOU의 경우 추후 이사회 동의를 거쳐야 하는 것은 물론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또 이 사실이 알려질 경우 경쟁사가 거래를 방해할 수 있고 이해관계에 따라 사내외의 압력이 생기기 때문에 비밀에 부치는 것이 보통이다. 이처럼 변수가 많기 때문에 양측이 MOU에 서명한다 해도 실제 거래가 이뤄지는 비율은 절반 정도라는 설명이다.

의향서의 경우 구속력 측면에서 MOU보다 한 단계 더 아래다. 단지 '귀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는 것을 표시한 서류에 불과하다는 것. 또 외국계 은행의 경우 '교섭' 만 해도 수수료를 챙길 수 있기 때문에 의향서를 쉽게 써준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종훈 유리시스템스 회장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투자를 검토중이며 아직 결정했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 며 "단지 '적극 고려' 중이라는 얘기다" 고 말했다.

미국계 금융기관과 3억달러 규모의 외자유치를 추진중인 국내 한 우량은행의 경우 유치 추진 사실이 한 언론에 보도되자 상대방측에 '해명서' 를 보내는 등 곤욕을 치렀다.

국내 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외국의 경우 통상적으로 최종계약이 끝나고 서명단계에서 발표한다" 며 "최근 국내 금융기관들이 외자유치 사실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비상식적인 일" 이라고 말했다.

◇풀어야 할 난제가 산적해 있다 = 대한생명과 메트로라이프생명의 구체적 계약내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메트로측이 제공하는 대출금의 일부를 대한생명 지분 60%에 대한 소유권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 미국 월스트리트의 보도다.

단 대한생명측은 메트로측에 넘긴 지분 60%중 10%를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경우 최근 아시아 시장에서 공격적 영업을 벌이고 있는 메트로측과 대한생명측이 향후 '경영권' 을 놓고 충돌할 소지가 많다는 것. 따라서 딜 자체가 바뀔 가능성도 크다.

조흥은행도 마찬가지다. 가격산정을 시가기준으로 할 경우 2억달러를 들여오면 현 주가수준이 1천5백원대이기 때문에 외국인 지분이 무려 50% 이상에 육박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또 외국인의 경우 국내 은행지분을 10% 이상 취득하기 위해서는 금융감독위원회가 정하는 금융업을 영위하는 금융기관이나 금융기관 지주회사여야 한다는 국내 은행법시행령도 해결되지 않은 걸림돌이다.

박장희.김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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