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13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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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제4장 서까래를 치면 기둥이 운다

한마디 거들었다가 무안만 뒤집어쓴 꼴이 된 박봉환은 슬그머니 자취방을 빠져나왔다. 사위는 벌써 어두워져서 해안도로 쪽으로 뚫린 좁은 언덕길에는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그러나 멀리 눈 아래로 바라보이는 방파제 안쪽은 정박한 어선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폭우가 내린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근처를 지나던 어선들까지 주문진 선착장으로 피항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힐끗 하늘을 쳐다보았다.

바람은 불고 있었지만 하늘에는 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변씨가 일깨워준 덕분에 소스라쳐 자취방을 나서긴 했지만, 봉환의 가슴속은 무거웠다.

당도하자마자 가게로 달려가지 않았던 것도 두 여자가 함께 있는 현장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천박하고 몰염치한 인간일지라도 그러한 구도를 가진 자리에 불쑥 얼굴을 디밀 만큼 뻔뻔스럽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자연 발걸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요행을 바란다면, 지금 당장은 두 여자 중에 한 여자만이 가게에 있어주는 것이었다. 모자를 눌러 쓴 두 사내가 좁은 골목길을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는 모습을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가로등 불빛을 등지고 있는 지점이었기 때문에 모색을 분명하게 식별할 수는 없었으나 낯선 사람들이란 예감은 들었다.

어쩐지 께름칙하였지만,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로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매우 건장한 체격을 갖춘 두 사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방어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서로 마주친 상태였다.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바싹 다가선 두 사람은 몽둥이를 휘둘러 봉환의 잔허리를 내려쳤다. 경황 중에 기습을 당한 봉환은 잔허리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무력감을 느끼며 이마를 담벼락에 박고 쓰러졌다.

그러나 그는 오뚝이처럼 곧장 일어났다.

달아날 것을 예측했던 사내가 잽싸게 다가와 봉환의 허리춤을 낚아챘고, 몽둥이 든 사내는 다시 한 번 그의 어깨에 일격을 가했다.

매가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나긴 했지만, 이웃이 눈치챌 정도의 소동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봉환이가 반격할 수 있는 틈을 주지 않았던 일방적인 공격이었기 때문이었다. 반격의 기회조차 놓쳐버린 봉환이가 기신을 잃고 쓰러지자, 두 사내는 씻은 듯 몽둥이질을 멈추었다.

근방에 인적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그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테러를 예견할 수 있는 흔적들을 깨끗하게 지운 뒤 한 사내가 봉환을 들쳐 업고 뛰기 시작했다.

뒤따라오는 사내는 몽둥이를 옷 속에 감추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테러와 납치였지만, 두 사내의 입에서 욕설 한마디 흘러나온 적은 없었다.

해안도로와 골목길이 서로 맞물린 들머리길에 한 대의 승용차가 정거해 있었다. 그들은 체구가 큰 편이 아니었던 봉환의 몸뚱이를 번쩍 추슬러 순식간에 승용차의 트렁크에 구겨 넣었다.

그리고 트렁크를 닫았다.

두 사내는 그제사 담배 한 개비씩을 달아 물고, 검은 구름이 낮게 드러워지기 시작하는 방파제 멀리로 시선을 돌렸다.

머지않아 비가 내릴 조짐이었다.

그들은 예사로운 척 담배를 피우고 있었지만, 행인들이 지나칠 적마다, 주위를 예리하게 살피는 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자신들을 수상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그들은 곧장 차에 올랐다.

해안도로의 서쪽 끝에는 낡은 어구들과 건축 폐자재들이 난삽하게 버려진 공한지가 있었다.

선착장과는 한길을 사이에 두고 등을 돌린 호젓한 장소였기 때문에 밤에는 도둑고양이들이 들끓었지만, 인적은 없는 곳이었다.

공한지 안쪽으로 느릿느릿 다가가는 승용차는 벌써 전조등을 끈 상태였다.

초입길에서 차를 멈춘 그들은 곧장 트렁크를 열고 봉환을 끌어냈다.

그리고 준비한 끈으로 봉환의 두 손을 뒤로 돌려 결박을 지웠다.

사내는 손으로 봉환의 턱을 받쳐 들고 동정어린 투로 가만히 물었다.

"정신은 차릴만 해?"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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