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폭락]G7“개입 안한다” 160선까지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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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엔화환율의 바닥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당분간 급속한 엔화 약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도쿄 (東京) 의 금융전문가들은 현재의 엔화 약세가 지난 10일 파리에서 열린 서방선진7개국 (G7) 재무차관 회담의 비밀합의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G7 사이에 "엔화 약세 저지를 위한 국제적인 공동개입 대신 당분간 엔화환율을 시장흐름에 맡긴다" 는 합의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 회담에서 "핫머니 규모가 너무 커 공동개입을 해도 엔 시세를 받치기 힘들고 비용도 지나치게 많이 든다" 며 "일단 시장에서 바닥이 확인된 뒤 엔 시세가 반등할 때 시장개입을 하는 게 효과적" 이라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두차례나 2백억달러 규모의 시장개입을 펼친 일본 정부도 이에 묵시적으로 동의했다고 도쿄 금융소식통들은 전했다.

따라서 "충분히 떨어졌다" 고 시장이 판단하기까지 당분간 엔화 약세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전문가들은 그 수준을 달러당 1백50~1백60엔대로 보고 있다.

다만 한번 '오버 슈트 (과잉 평가절하)' 된 엔화환율이 반등할 때는 일본 정부의 시장개입에 힘입어 급속한 회복세를 보일 전망이다.

외환 딜러들은 11일 "일본은 시장 개입보다 경제의 근본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는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의 발언도 G7재무차관 회담의 교감에 따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도 이에 따라 단기적인 극약처방 대신 경제체력의 보강을 위한 보약 (補藥) 을 잇따라 발표하는 등 노선 전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총리는 이날 "추가경정예산안을 시급히 마련해 (16조6천억엔의) 경기부양책을 하루 빨리 집행해야 한다" 고 언급했다. 단기대책보다 보약처방을 요구하는 루빈 장관의 발언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약이 약효를 낼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 경제위기에 빠진 아시아 국가들은 엔화 약세에 따른 고통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할 처지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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