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문창극 칼럼

북핵은 통일의 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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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오바마와 이명박 대통령 간 한·미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북핵 해결을 위한 공동전선이나 미국의 안보공약 확인, 한·미 간 자유무역협정(FTA) 공감 등을 꼽는다. 정상회담 바로 전날 워싱턴의 아메리칸 대학에서 열린 한반도 세미나에 참석한 나는 북핵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이 나서야 하며 중국의 협조 없이 북핵은 해결될 수 없다는 요지의 발표를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역할이 구체적으로 거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향후 북핵 문제가 과연 풀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한·미 간에 처음으로 한반도 통일에 대한 큰 밑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번 회담이 역사적인 정상회담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양국 정상이 발표한 ‘한·미 동맹을 위한 공동비전’에서 “한반도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한 평화 통일을 지향한다”고 명문화했다. DJ 정권 이후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통일의 목표가 무엇이냐에 대해 정부의 누구도 언급하기를 꺼려 했다. 낮은 단계의 연방이니 하는 애매한 말로 정체 불명의 통일을 미화시켰던 과거와 달리 분명하게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을 선언한 것이다. 그것도 미국의 매파인 공화당 정부가 아니라, 평화를 내세운 민주당 정부와 합의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사실 북한 핵은 그것만 따로 떼내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지금까지 6자회담이 실패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6자회담은 북한 핵을 외교수단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는 북한이 왜 핵무기를 보유하려 하느냐에 대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순진한 발상이었다. 북한에 핵무기는 절대적 국가이익과 관련된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치 않으면 나라가 붕괴된다는 국가존립과 관련된 절대적인 관점을 갖고 있다. 어느 나라든 국가의 존립과 연관된 절대적 국가이익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는다. 북한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국가이익을 경협이라는 물질적 보상이나 혹은 평화조약이라는 문서를 믿고 포기할 것인가.

북핵은 북한의 존립과 절대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북핵을 제거한다는 것은 북한의 존립을 흔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북핵은 북한의 존립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으며, 북한의 존립이라는 문제는 말을 바꾸면 우리의 통일 문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핵 처리는 통일 과정의 일환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북핵 해결에 앞서 한반도 통일이 어떤 식이어야 하는가 하는 큰 밑그림이 있어야 하고, 그 그림에 따라 북핵의 해체 과정도 진행되어야 한다. 여기에 바로 중국의 영향이 절대적인 것이다.

원유 등 중국의 지원이 없다면 북한은 곧 식물국가가 되어 버린다. 유엔 안보리가 무슨 제재 결정을 하든 중국이 북한을 도와주는 한 북한은 현재의 자세를 고수할 것이다. 중국은 궁극적으로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고 북한 체제를 유지시키는 것이 이익인가, 아니면 북핵을 제거하고 현 북한 체제를 바꾸는 것이 국가 이익인가를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부시 정권 때인 2003년 4월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북핵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의 협조하에 북한의 리더십을 바꿀 수밖에 없다는 펜타곤 메모를 돌린 적이 있다. 중국의 협조를 받아 내려면 한반도에서의 변화가 중국에 결코 불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한·미가 보장해야 한다. 북한 내의 돌발사태 시 발생할지 모르는 수십만의 탈북자 문제나, 북한이 무너지는 경우 주한미군이 중국 국경인 압록강까지 올라가는 문제 등에 대해 중국의 우려를 풀어 주어야 한다. 더 나아가 북한 체제의 변화 시 일시적인 중국의 영향까지도 양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줘야 될지도 모른다.

바로 이런 점에서 한국과 미국은 통일 후의 한반도가 최종적으로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느냐에 대한 합의가 먼저 필요한 것이다. 통일 한국이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체제로 간다는 한·미 간의 합의는 향후 북핵 해결 과정에서 빚어질 다양한 변수를 딛고 통일의 방향을 제시해 줄 지침서가 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통일한국이 중국에도 유익을 가져다 준다는 점을 이해시켜야 한다.

나는 북핵 문제가 우리에게 전화위복이 되어 통일의 문이 열릴 것으로 본다. 북한이 조급하게 핵을 향한 발걸음을 옮길수록 통일의 기회는 점점 가깝게 다가온다. 문제는 우리의 준비다. 상대가 목숨을 걸고 나오는 문제인 만큼 우리에게도 고통이 따른다. 우리의 고통 없이 북핵 문제 해결은 없다.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서는 한국의 리더십 역시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과연 그러한 신뢰를 쌓고 있는가.

문창극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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