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보다 무서운 기내 음란행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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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달 말 런던에서 남아공 (南阿共) 의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한 항공기의 비즈니스 클래스에서는 민망하기 짝이 없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술이 잔뜩 취한 50대의 영국인 유부남 사업가와 인도 출신의 20대 모델이 승객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 섹스' 를 벌인 것이다.

기장까지 나서서 이들을 떼어놓기는 했으나 가족 단위의 탑승객들은 눈살을 찌푸려야만 했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급증하고 있는 기내 음란행위 때문에 항공사들이 골치를 앓고 있다고 11일 보도했다.

항공사의 이미지 측면에서는 기내 음란 행위가 항공기 테러보다 더 무서운 존재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싱가포르항공의 기내에서 일어난 소란의 3분의 1은 바로 음란 행위였다.

이미지 저하를 우려해 내놓고 발표를 못하지만 다른 항공사들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음란행위를 부추기는 주범은 기내에서 무제한 공짜로 제공되는 술이다.

장시간동안 술잔을 건네며 친밀감을 갖게 된 남녀들이 바로 이런 소동의 주인공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어두운 기내와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심리도 이들을 한층 대담하게 만든다.

문제는 기내 음란행위가 단지 소동에 그치지 않는 데 있다.

기장과 승무원의 신경을 거슬려 안전 운항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특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커플들 때문에 항공기 출발 시간이 지연되기도 한다.

지난해 호놀룰루를 경유해 로스앤젤레스로 가던 델타항공의 한 항공기는 호놀룰루 공항에서 발이 묶였다.

한창 열이 오른 커플이 승무원들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다.

모든 승객이 착석해야만 출발할 수 있다는 비행원칙 때문에 이들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버진 애틀랜틱 항공은 일부 노선에 아예 개인룸을 만들어 다른 승객들을 보호하고 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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