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자율고’에 역행하는 선발 규제 완화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학교 다양화를 통해 공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자율형 사립고(자율고) 정책이 난항을 겪고 있다. 사립고의 외면으로 자율고 전환 신청이 저조해 자율고 100개를 지정한다는 정부의 당초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한 처지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엊그제 발표한 자율고 전환 신청 마감 현황에 따르면 서울에서 30개 교가 신청했을 뿐, 대부분 시·도에선 1~3개 교가 신청하는 데 그쳤다. 서울에선 당초 67개 교가 자율고 전환을 희망했지만 실제 신청 학교는 절반에 그쳤고, 그나마 3개 학교는 전환 신청을 했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2개 교가 희망 의사를 보였던 경기도에선 단 한 곳만 신청했고, 전남·울산·제주는 아예 신청 학교가 없다.

학교들이 자율고 전환을 꺼리는 건 무엇보다 학생 선발권 제한 때문이다. 정부는 당초 내신·서류전형과 면접전형을 검토했으나 평준화 지역의 경우 무시험 추첨 전형으로 최종 결정했다. 사교육 유발을 막는다는 이유에서다. 응시생을 대상으로 면접을 볼 수 없는 데다, 내신성적 순으로도 학생을 뽑을 수 없으니 우수 학생 선발은 어림없게 된 것이다.

정부는 자율고 설립 취지부터 다시 점검해 봐야 한다. 국가의 획일적인 통제에서 벗어나 교육과정, 교원인사, 학사운영 등을 학교가 자유롭게 운영하는 수월성 교육을 통해 교육 경쟁력을 높이자는 게 자율고의 취지 아닌가. 당초 많은 사립고가 정부 지원 없이 학생 등록금과 재단 전입금만으로 학교를 운영해야 한다는 부담을 무릅쓰고 자율고 전환에 의욕을 보였던 것도 그래서다. 그런 마당에 가르칠 우수 학생을 직접 뽑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자율고 설립 의미를 퇴색시키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손발 묶어 놓고 열심히 뛰라는데 어느 학교가 나서겠는가.

자율고 도입은 40년 가까이 하향 평준화를 초래한 평준화 정책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대안의 의미도 있다. 그렇다면 사교육 부작용의 눈치를 보느라 절름발이로 만들 게 아니라 제대로 정착시키는 게 우선이다. 입학전형을 궁극적으로 학교 자율에 맡기는 게 그 첫걸음이다.